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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20대의 특별한 세상 (2)

코로나의 겨울에도 따뜻한 달동네

70대 마을버스 기사님

정원진 작가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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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보이는 동네에 살았다. 나 혼자만의 첫 집은 아주 높은 언덕에 있었다. 걸어 올라가다 올라가다, 잠깐 멈춰 쉬고, 다시 걸어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외출을 할 때마다 등산을 해야 했지만, 그곳이 싫지만은 않았다. 높은 곳에서 보는 달이 예뻤기 때문이다. 야경이 참 예쁜 집이었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께 괜히 죄송스러울 만큼 높고 가파른 곳이었지만, 조그만 버스가 지나다녔다. 마을버스는 종종 내 발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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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나와 친구는 마을버스에 별명을 지어 부르곤 했다. 종로13이라 ‘종삼이’.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조그만 마을버스가 귀여워 그랬다. 작은 몸집으로 가파르고 좁은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꽤 기특했다. 무엇보다 종삼이가 끊기면 나는 울면서 그 길을 걸어 올라야 했다. 종삼이는 참 고마운 존재였기에 귀여운 별명으로 애정을 대신 표현하곤 했다.
소파에 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익숙한 풍경에 멈추었다. 어? 저거 우리 동네잖아. 우리 동네를 참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KBS <다큐멘터리 3일>에 마을버스 서대문07번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종로구와 서대문구 사이 어딘가에 산다. ‘서칠이’를 타본 적은 없고, 종종 그의 친구 ‘서팔이’를 탄다. 서칠이와는 오며가며 얼굴이나 보는 사이다. 서칠이의 72시간이라니, 너무 기대되잖아!  반가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서칠이는 홍제역과 개미마을을 오간다. 개미마을은 인왕산 끝자락에 위치한 달동네다. 달이 보일 만큼 높이 있어 달동네요, 개미처럼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개미마을이라 한다. 개미마을은 1950-60년대 마을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로부터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시 말해, 개미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1950-60년대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 초반엔 마을 특유의 정겨운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버스와 달리 정류장 아닌 데서도 승객을 태워주고, 심지어는 기사님이 알아서 집 앞에 내려주기도 한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셨다는 할머니는 버스가 지나는 소리만 듣고도 운전하는 기사가 누군지 알아맞힌다. 나가서 기사에게 검은 봉다리를 건넨다.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가 담겨 있는. 그런데 이게 또 공짜는 아니다. 기사님은 할머니 심부름으로 아랫동네에서 약을 사다 드려야 한다. 그런 기브앤테이크의 정이 있는 마을이다.
기사님은 아주 오랜 시간 서칠이에 여러 인생을 싣고 달렸다. 기사님이 어릴 때부터 봐온 아이는, 이제 커서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태권도 학원을 다닌다. 국수가게 사장님은 새벽 차를 타고 나가 막차를 타고 돌아온다. 코로나19로 해고당한 요양보호사는 기사님과 실업급여에 대해 수다를 떨며 다시 일자리를 찾으러 간다. 버스가 없었다면 그 높은 동네를 걸어서 오갔어야 할 테다. 서칠이는 지친 마을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서칠이는 기사님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아주 소중한 존재다.
종삼이가 내게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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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멘터리 3일> 캡처

 

서칠이의 하루는 우리 집 근처 차고지에서 시작한다. 내가 산책할 때마다 지나다니는 곳이다. 기사님들은 매일 아침, 버스에서 조회를 하는데 프로그램에 나온 그날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 노선은 적자인 지 오랜데, 코로나19까지 겹쳐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때문에 정리해고가 있는 날이었다. 시발택시 시절부터 운전대를 잡은 70대 기사님이 해고 당했다. 해고 당한 기사님의 인터뷰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자신은 이미 은퇴 나이를 넘겼고, 매 해 감사한 마음으로 계약을 연장한 거라고. 지금 더 바라면 욕심이라고. 끝을 알고 있는 어른의 담담하고 멋있는 말이었다.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내내 따뜻하기도 시리기도 한 서칠이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꽤 긴 자막이 나왔다.

"서울시에서 운행되고 있는 마을버스는 총 1,659대, 그 중 서대문07번 버스는 단 두 대뿐이다. 서울시 마을버스는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승객수가 전년 대비 평균 35% 감소했다. 6년째 동결된 버스요금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마을버스 운수회사는 유례없는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에 운행 횟수를 단축하고, 기사들의 무급 휴가와 구조조정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 서대문07번 버스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높고 좁은 비탈길을 달린다."
오랜 시간 서칠이가 개미마을을 오르 내리길 바란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뽈뽈거리고 다닐 마을버스를 위하여! 수많은 서칠이와 종삼이를 위하여! 그 안에 실린 따뜻하고도 시린 우리네 인생을 위하여!
 
글ㅣ 정원진
언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언론학을 통해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할지 익혔고, 사회학을 통해 무엇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할지 배웠다. 일주일에 두번 지인들에게 메일로 내 글을 보낸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답장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접하며 느낀 것이 있다. 모든 삶은 특별하고도 평범하다는 것. 내가 목격한 특별하고도 평범한 삶에 대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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