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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봐도 되는 日記

착한 임대인, 나쁜 임대인

"임대료 한푼 못받고 은행돈 갚는 나는?"

이강식 작가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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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를 넘고, IMF 위기 등 開途國 험로도 거쳐,

무역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언저리로 들어서며,

적어도 코로나 19 이전까지의, 다들 잘 나가던 그 시절.

 

먹고 살만 해지니, 너나없이 화두가 '財테크'였다.

그것도 '은퇴 후 노년기 생활자금 확보 방안'이 主테마.

여기저기서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와 '개구라'를 푼다.


"지금 사는 집 그대로 살면서, 월세 받는 주택연금을..." 

"적금처럼 넣었다, 노후에 월정액이 나오는 연금보험..."

"자산가치도 올라가고, 월세도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


그중, 가장 솔깃한 처방은, 역시 수익형 부동산이었더라.

이래저래 凡夫의 능력으론 감히 손댈 수 없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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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 양천구 소재 어느 부동산의 매물 소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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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K.

까까머리 학창 시절부터의 고지식한 성품 그대로,

은행원 생활 몇십 년 성실히 하고, 지점장으로 名退했다.


두어해 특별한 일 없이 지내더니, (준비기간이었던가.)

어느 날, 전문가들 조언 따라 '수익형 부동산'을 잡는다.

퇴직금 + 모아놓은 쌈짓돈 + 은행융자까지 탈탈 털어

대로변 中型빌딩內 한구석 30여 평 상가를 사들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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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익형 부동산의 例示. 본문 내용과는 연관 없음)

 

이후 예닐곱 해 동안, 작년 초까지도 그는 해피해 보였다.

친구들에게 밥도 가끔 사고, 경조사에도 빠짐이 없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노후생활에 별 애로가 없는 듯했다. 

시쳇말로, '월급쟁이들의 로망'을 구현하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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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에다, '손자 당직' 사정으로 몇 달 만에 만난 그.

설 이브에 소주잔 드는 손이 어째 영 매가리 없어 보인다.

허물없는 사이다 보니, 묻기 전에 그가 먼저 털어놓는다.


"임대료를 못 받고 있어. 벌써 몇 달째..."

학원인데, 코로나로 정상수업을 못해 그렇다고 한다.


"그쪽 사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럼 난 어쩌라구?..."

생활비는 고사하고, 은행 빚 이자 내는 일이 힘들단다.

마누라 얼굴 보기도 쪽스럽고, 당장 용돈도 궁하고...

새해 들어선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날의 연속이란다.


"임차인~? 미안하다는 말만 하지. 거기도 어쩌겠어.

몇 차례 통화도 했지만, 그래 봤자 속만 더 상하고?"


"근데, 뭐라~? 여기다 대고 임대료 인하하라고~?

그래야 '착한 임대인'이라고라~? 에라이 쥑일 X들~!

나야말로 월세로 근근이 먹고사는 영세 소상인인데~!"

누구 염장 지르나? 임대료 구경도 못하고 있는데..."


언성을 높이긴 해도, 그는, 어깨를 더 떨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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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막' - 이동준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정회원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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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결국, 

밀린 임대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설을 지냈다.

조상님들 茶禮마저도, 통닭 놓고 간소하게 지냈단다.

친구들 사이에 부러움을 사던 '수익형 부동산 쥔장'이.


설前에 체임(滯賃), 체불(滯佛)을 일소하는 商도덕이나,

설날에 賃貸借人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美風 따위는

2021년 初의 '수익형 부동산'에선 찾아볼 수 없더란다.


그럼에도, 그가 이 新版 보릿고개를 짊어지고 가는 건

그나마 일 년정도만 견디면 코로나가 극복되리라는,

임대인으로서 최소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오기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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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와중에, 요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전가의 보도인 '兩分法'으로 재미를 보려는 정치인들.

(다가오는 선거 시즌용 '표 모으기' 짓인 줄 잘 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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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의의 전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공식대로, 임대인과 임차인을 양쪽으로 갈라 세우고

'임대인=나쁜 놈', '임차인=착한 사람'의 논리를 편다.


그러고는, 코로나 피해 보상책으로 임대료를 꺼내 든다.

"임대료를 인하하라!" "임차료를 인하(탕감)해 주겠다!"

거기에 경제부처, 국세청, 지자체까지 나선다.

"그만큼 세액공제도 해줄테니~!" 겁박하듯 들이민다.

(정작, 그 '임대료'는 실체 조차 볼 수 없는 실정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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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털 챕커 :착한 임대인 관련 기사)

 

망가진 서민상권의 책임이 전적으로 '임대료'에 있고,

그 속죄양은 바로 '나쁜 임대인'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말로는 '서로 고통을 분담하자.'라고 하면서...

어느새, 그런 홍위병式 등식에 사회가 익숙해져 간다.


그, 나쁜 놈, 임대인은 

아무 잘못한 일도 없이, 억장이 무너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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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도와줄 묘책이 따로 없다 보니,

그저 용기를 내라고, 조금만 더 잘 버텨내라고,

쏘맥 폭탄이나 질퍽히 말아 연방 주고 받을 밖에.


마침, 실내포차 벽에 걸린 TV에서 공익광고가 나온다.

"당신이 바로 착한 임대인입니다~!" 

"임대료 인하에 동참하시는..." 云云,나팔을 분다.


그렇다면, 저 친구 K는

'착한 임대인'일까?  '나쁜 임대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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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다음날인 오늘.

괜한 걱정에 전화를 해 보니, 그는 혼자 오전부터,

'미세먼지=나쁨'의 거리를 이리저리 나돌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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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ean City의 탈출' - 이동준 作)

 

글ㅣ 이강식
고려대 사회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졸업했다. 재학 중 고대신문 편집국장을 꽤 오래 역임했고, 언론 특히 MBC 등 방송계에서 다양한 영역을 두루 거쳤다. 일, 사람, 술, 山, 여행을 좋아하며, 利他行이 삶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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