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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2006 한국인 vs 일본인 (20)

일본은 상상도 못하는 한국의 속도전

콤플렉스 딛고 일본 따라잡은 원동력!

 

3일 뒤 사장이 폭탄 선언을 했다. 얼마 전 개발된 다이어트 음료를 기폭제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음료 시장에 전격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내 방송을 통해 전 사원에게 전달된 연설 내용에 사원들은 놀랬다.
“아니, 다이어트 음료가 개발된 지 며칠 됐다고…"
“아직 국내 시장에서도 선보이지 않았잖아."
“광고 컨셉도 안 정해졌는데…."
“이번에야말로 사장이 된 통 당할 지도 몰라. 음료 시장이라면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들이 꽉 잡고 있고, 우리 음료 시장은 이웃 일본에서도 명함을 못 내밀고 있는 형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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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한국의 대기업들은 빠른 스피드 경영과 세계 최첨단 IT 인프라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IFC몰.

 

다음날 오후, 회사측은 다이어트 음료의 국제 시장 진출을 계기로 회사 내 다른 제품들의 해외 진출도 경쟁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회사 인사담당 전무 명의로 발표된 내용을 보면 ▲회사 시스템을 글로벌화해 일본?중국?홍콩?싱가포르?인도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법인들이 교역 및 마케팅, 제품 개발 업무를 자율적으로 하며 ▲법인장 등은 나이?경력?직급에 구애 받지 않고 능력 위주로 연말까지 발탁 인사하며 ▲법인은 법인장 지휘 하에 내년 3월 이전까지 출범한다는, 그야말로 시간을 다투는 화급한 내용들이었다.
이날 회사 내에서는 종일 해당 지역 신설 법인장 후보들에 대한 소문과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법인장 꿈을 꾸기에는 연소한 김과장 또래의 직원들은 “잘 하면 외국 근무 좀 할 수 있구나"라는 차원에서 꿈이 부풀어 있었다.
이날 저녁 약속대로 김과장과 다나카, 한기자 세 사람이 삼각지 양곱창집에서 만났다. 재래시장 골목에 있는 이 집은 한기자의 10년 넘은 단골집인데 값도 비싸고 서비스도 불친절했지만 맛 때문에 도저히 발길을 끊을 수가 없는 집이었다. 차돌박이와 간장 소스, 그리고 고추장으로 버무린 양 무침, 마지막 식사용으로 멸치에다 두부를 넣고 만든 된장찌개 맛이 끝내주었고 늘 손님들로 만원 사례를 이뤘다.
김과장은 서로 인사를 시킨 뒤 석쇠에 고기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차돌박이는 워낙 얇게 썰어져 불에 넣자마자 뒤집지 않으면 새까맣게 타기가 일쑤였다. 다나카는 연 이틀 계속된 회사 발표 내용에 당황한 듯 했다.
“한국 기업, 순식간에 결정해 밀어부치는 힘 대단합니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해요. 너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해요. 저러다 실수하면 어쩌나 생각도 들구요. 회사 명운이 걸린 대사(大事)인데 왜 그렇게 급하게 하지요?"
적당히 익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은 한기자가 말을 받았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결정이 떨어지면 바로 달려 나가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달성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보시는데 우리가 볼 때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도대체 산업화에서만 백년, 이백년 뒤진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죠? 그 길 밖에 없습니다."
다나카가 표정을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이미 김과장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물론 한강 기적 대단하죠. 그러나 실패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성수대교 붕괴, 백화점 붕괴, 비행기가 떨어지고 배가 침몰해 수백명이 몰살하고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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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자가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세 사람은 서로 잔을 부딪치고 비웠다. 김과장이 잔을 채울 때 한기자가 차분한 어조로 대화를 이끌었다.
“옛날 이솝 우화에 나온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맞는 버전입니다. 지금 토끼는 앞서 뛰면서 낮잠도 자지 않을 뿐더러 뒤에 거북이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길목에 덫도 만들고 구덩이도 파놓는 등 갖은 꾀를 다 씁니다. 이런 토끼를 거북이가 성실과 끈기만 가지고 당해 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더 빠른 토끼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간 토끼를 잡기 위해 때로는 절벽에서 몸을 날리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며, 봉우리를 선점하기 위해 자일을 타고 직벽을 올라가는 모험도 감행해야 합니다. 바로 삼성전자가 그런 방식으로 스승이자 선발주자였던 일본 전자업계를 추월한 것이 아닙니까?"
삼성전자가 소니를 비롯 일본 전자업계를 추월한 스토리는 이제 전세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과거 ‘일본 전자산업=세계 최고’ 등식이 성립됐기 때문에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은 삼성이 최고 일류가 됐다는 소리와 같다.
 
불과 30년 전 싸구려 흑백 TV나 만들어 팔던 후진국 회사가 어떻게 세계 1위로 등극할 수있었을까? 여러 이유들이 나온다. 그러나 핵심은 ‘시간 싸움 전략’에서 승리한 것이다. IT와 같은 첨단 업종에선 1등만 존재하며 2등은 패자다. 이 사실을 삼성이 제일 먼저 체득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삼성 이병철 회장(현 이건희 회장의 선친)이 일본 산요와 손잡고 전자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일본 기업 대부분이 말렸다.
“종전처럼 비누나 밀가루 회사나 하세요. 전자산업 아무나 합니까? 라디오가 고장 나도 제대로 고칠 인력도 없는 나라 아닙니까?"
1970년대 초반 삼성이 이번에는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일본 기업가들은 코웃음을 쳤다.
“자전거 하나 제대로 못 만들면서…."
삼성은 철저히 일본 기업을 카피했다. 일본 기업의 인력 관리, 교육에서부터 부품 제조, 시스템, 전반적인 공정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것을 모조리 본땄다. 자존심 다 죽이고, 체면 불구하고 ‘형님’으로 모시고 말이다. 일본은 한국 대기업으로는 드물게 일본에게 굽히고 싹싹하게 나오는 삼성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조금씩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러기를 30년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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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삼성의 세계적 기업 도약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 후반 삼성은 드디어 승부수를 던진다. 일본 기술 수준의 80% 이상을 습득했다고 판단하고, 독자적 제품 개발?판매?경쟁의 ‘마이 웨이’ 로 과감하게 나선다. 한기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일본을 가장 모방했던 삼성이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을 버리고 한국식 거친 승부사로 변신한 거죠."
이때부터 삼성은 예전의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간다’는 ‘신중한’ 삼성이 아니라 ‘나무다리도 토끼처럼 뛰어서 건넌다’는 ‘빨리빨리’ 삼성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얌전하고 모범적인 삼성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몸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거칠고 불량스런 삼성이 됐다. 이후 연전연승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삼성은 2001년 일본 도시바가 제의한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 전원이 끊겨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기억장치)의 합작 요청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독자개발에 나섰다.
“이 시장에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세계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LCD(액정표시장치) 시장도 일본을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반도체도 삼성이 정상이다. 이제 삼성은 당당히 “1위 비결은 남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날 한기자의 말솜씨는 대단했다. 막힘없이 술술 나오고 적당한 시점에서 적절한 사례를 들어 실감나게 설명했다. 다나카도 입을 헤 벌리고 듣고만 있었다. 그 바람에 불판에 고기는 익다 못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다나카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그토록 당당하게 한국에 비판적이었는데….
 
김과장이 한기자에게 물었다.
“그런데도 왜 국내에서는 일본처럼 몇십년에 걸쳐 준비하는 ‘신중함’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많습니까?"
“그거야말로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세. 그래요. 일본은 하나의 성과를 위해 보통 10년 전부터 준비해 결과를 얻는다면 한국은 불과 1~2년 남짓의 준비로 결과를 얻지.
일본이 ‘신중한’ 의사결정이라면 한국은 ‘빠른’ 의사결정이야. 물론 둘 다 가지면 좋지만  그 중 선택을 하라면 당연히 ‘빠른’ 결정이지. 일본이 반세기 넘도록 아직까지 극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의 안정추구 분위기와 아울러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빠른 의사결정의 부재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네."
김과장은 아까 한기자가 말한 ‘1위 비결은 남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이란 구절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그래 후발 주자는 어차피 선발 주자를 따라 잡기 위해 모방할 수밖에 없어. 앞서 간 이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말이야. 그러나 모방을 계속하면 영원한 2등 밖에 될 수 없다. 두 사람의 간격이 어느 정도 좁혀졌을 때 후발 주자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독자적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자신만의 스퍼트(spurt)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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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된 삼성

 불량 학생이 모범생을 따라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모범생의 모든 것을 베낀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검 승부를 걸어야 한다. 김과장은 비로서 ‘콤플렉스를 극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1등이 될 수 없다’는 박교수 이야기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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