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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2006 한국인 vs 일본인 (14)

있으면 왕창 쓰는 한국인

한푼도 따지고 쓰는 일본인

“어이쿠."
김과장은 은행에서 보내 온 지난달 카드 사용 내역서를 보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지난 달에도 이미 자신이 정한 상한액을 넘어 초과 지출 했는데, 이번 달에는 거기서 다시 50여 만원이나 더 쓴 것이다.
‘집 사람이 알면 난리 날 텐데….’
아내의 성난 얼굴을 상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원래 김과장도 그리 소심한 사내는 아니었다. 연애 시절 김과장은 ‘남자답게’ 아내를 리드했었다. 결혼하면 남과 다른 남편상을 구현하겠다고 수차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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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만 해도 한국 직장에선 회식문화가 성행했었다.

 

그러나 한국 직장 생활이 그를 모범적으로 놔두지를 않았다. 잦은 야근과 술자리, 심지어 주말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바깥 생활을 하다 보니 결혼 생활 7년 동안 부부 관계는 완전히 역전됐다. 아내가 집안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더구나 김과장의 씀씀이는 결코 경제적이지 못하다.
  
‘이번 달 카드 결제를 하고 나면 호주머니는 거의 텅 비는데 한 달을 어떻게 지내지? 연말 보너스 까지는 거의 두 달이나 남았는데…’
가벼운 절망감이 가슴에 엄습했다. 이것이 한국 샐러리맨들의 현실이다.
사실 김과장은 명품을 선호하거나 사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하고 이곳 저곳 신경 쓰는 데가 많다 보니 자연 돈 쓸 데가 많았다. 지난 달 경조사만 해도 무려 6건이었고 동창회다 사내 동호인 모임이다 참가비도 솔솔치 않게 나갔다. 30대 후반 나이라 후배나 동생 등 챙겨야 할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술이었다. 본인이 술을 좋아해 자연 술값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술김에, 기분에 카드를 확 그어 버리는 좋지 못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2차 술값에서….
이날 저녁 다나카 고문과 요시다 사장, 그리고 김과장 직속상관인 무역부장 등 4명의 회식 자리가 열렸다. 화제는 자연스레 한국인의 씀씀이 행태로 옮겨졌다. 한국서 오래 살은 요시다 사장이 먼저 음식 문화에 대해 말했다.
 
 
“여전히 한국 음식은 가지 수도, 양도 너무 많아요. 남는 것은 다 음식 쓰레기가 될 텐데 환경에도 안 좋죠. 그리고 한국 사람들 식사 문화는 폭식(暴食)이에요. 요즘은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나아지고 있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더 먹어라, 더 먹어라’고 하는 거에요. 나는 배 불러 힘든데 말이에요. 일본 사람들은 소식(小食)이라서 자꾸 권하는 것이 실례인데 한국에선 도리어 그게 예의입디다."
고개를 끄덕이던 다나카가 말을 받았다.
“폭식 습관은 아마도 예전에 못살고 못 먹다 보니 지금 있을 때 많이 먹어 두자는 데서 연유되지 않았나 생각돼요. 힘든 세상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 점은 한국인들의 술 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요. 일본이나 서구에선 마시다 남은 술을 술집에다 보관해두는 ‘보틀 킵(bottle-keep)’ 문화가 있지만 한국인들은 대부분 병째 다 마셔버리잖아요. 술을 남기면 ‘째째하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요."
무역부장이 맞장구를 쳤다.
“제가 일본 출장 가서 놀란 게 선술집에서 소주까지 보틀 킵하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전 ‘야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게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인의 절약정신이라고 할까, 합리적이고 착실한 소비 행태라고 할까…."
흐뭇한 표정의 다나카가 무역부장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한국에서 술 마실 때 ‘내일 아침 일찍 일이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끝냅시다’라고 하면 참 인기 없는 발언이죠. 제가 한번 그랬더니 상대가 정색을 하며 ‘뭐야! 일본 사람은 내일 일을 생각하면서 술을 마시나?’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정말 한국 사람의 술 문화에는 내일이 없어요."
다나카가 힐끗 김과장쪽을 쳐다 보았으나 김과장은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요시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글 중에 ‘내일’을 뜻하는 순 한국말이 없는 거 아시죠? 
‘내일’은 한자 ‘來日’에서 따온 겁니다. ‘어제’나 ‘오늘’은 순 한글인데 왜 ‘내일’만 한글에 없을까요? 아마도 한국에서 ‘내일’에 해당하는 가까운 미래는 언제나 비관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내일을 못 믿기 때문에 오늘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 것이며, 내일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적기 때문에 음식?술?소비 문화 모두, 있으면 왕창 오늘 써버리는 식이 된 것이라고 봐요."
김과장은 이날 술 자리 대화가 마뜩찮았다. 한국인이 가진 특성을 죄다 부정적으로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속상관인 부장이 일본인들의 주장에 반박은커녕,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더욱 못마땅했다. 부장이 김과장의 빈 잔을 건너뛰고 다나카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나쁘게 말한다면 덜렁거리고 세세한 것을 싫어하는 점이 있죠. 택시를 타도, 술집에 가도 거스름돈인 잔돈을 잘 받지 않습니다. 괜히 째째하다는 생각에서죠. 그러다 보니 한국 업주들은 음식이나 차 값도 하루 아침에 20~30% 왕창 올려 버리고 손님들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요즘에는 정부까지 그 방식에 따라 한 번에 세금을 50%, 100% 심지어 200%까지 왕창 올리던데요."
요시다는 등심 조각을 상추에다 올려 놓고 된장과 파서리, 마늘을 함께 넣어 한 입에 넣었다. 20년 넘게 한국서 살면서 ‘한국식’에 익숙해 그의 일본식 억양을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꿀꺽 상추쌈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한국 교수 분이 쓴 ‘현대 한국인의 성격’이란 논문을 보면 ‘겉치레를 좋아하고 허영심이 강하다’, ‘큰 것,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세계 최고급품이라든가, 브랜드제품에 약하다’고 돼 있더군요. 어찌 보면 높은 자존심이며, 달리 보면 너무 외관에 신경 쓰는 허영심 덕에 그런 과소비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명품 좋아하기로는 일본 사람들 따라갈 사람 있을까요? "
침묵하던 김과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두들 귀를 쫑긋 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파리 샹젤리제의 명품 가게들, 홍콩의 루비똥 핸드백 가게에는 연일 일본 쇼핑객들로 만원이란 외신 기사가 어제 오늘 난 일인가요? 그리고 일본 틴에이저들의 원조 교제도 시발은 명품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다나카와 요시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부유한 나라인데도 개미처럼 근검절약하며 작은 돈에도 바르르 떨면서 사는 모습을 놓고 대단하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왜 그리 궁상맞고 째째하게 사느냐고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한국을 잘 알며 한국을 좋아하는 친한파인데도 시각은 여느 일본인들과 다름이 없네요."
다소 흥분된 어조의 김과장의 말에 두 일본인은 듣기만 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흥청망청 쓰는 민족이란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없어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의 저축률은 소득의 40%에 육박해 세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근검절약하지 않고 어떻게 최빈국에서 OECD 국가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모두들 침묵하고 있었다. 김과장의 말은 이어졌다.
“한국인의 기분파적 기질, 물론 장단점이 있죠. 한국인의 계산적이지 않은 행태, 일본인의 관점에선 문제가 많게도 보일 수 있죠. 그러나 한국적 관점에선 남에 대한 배려, 정, 호연지기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한국 속담에 ‘말 한 마디면 천냥빚도 갚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바로 그게 한국인입니다. 서로 의견이 통하고 이해가 되면 그깟 돈이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무슨 큰 문제냐는 것입니다."

그는 일본 연수시절 이웃 한국 주재원 부인이 들려준 얘기를 소개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초등학생 아들과, 아들의 친구인 일본인 어린이를 데리고 영화 구경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아들 구경도 시켜 줄 겸, 평소 일본어가 서투른 아들과 함께 잘 놀아준 일본 어린이에 대한 ‘한국식’ 배려 차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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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상당수는 자신의 수입지출에 대해 가계부를 쓰는 등 꼼꼼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튿날 그 일본인 어린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사용된 경비 일체를 정확히 계산해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국 부인은 일본 사람들의 정확성이 무서울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를 전해 김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관계조차 돈으로 계산하는 일본인들의 계산법에 기가 막혔다.    
“차가운 머리만 느껴질 뿐 도대체 가슴이 느껴지지 않아요. 모든 것을 경제적 척도로 재는 사고방식은 어쩌면 상상력과 창조력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얼마나 많은 지 이해되지 않습니까?"
이 말에 다나카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청빈(淸貧)사상이 있지요. 돈 버는 일을 경멸하고 나아가 기업활동을 죄악시하거나, 상대적으로 가진 자에 대한 불만과 질시를 보내는 경향 말입니다. 그런 경향이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금전적 계산을 우습게 여기도록 만들어 결국 자본주의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는 게 아닐까요?"
김과장이 지지 않고 말했다.
“나는 반대로 세계의 부를 좌지우지 하는 일본이 매사 주판알 퉁기며 계산하는 구멍가게 주인 같은 자세가 미래 사회에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과장은 말을 멈추고 잠시 좌중을 둘러 본 뒤 말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미국의 월 스트리트 금융가는 하루 한 시간도 일 안하는데 수백만, 수천만, 수억달러의 이익을 한번에 보기도 합니다. 그는 돈을 물쓰듯 펑펑 써도 주체 못할 만한 돈을 또 벌어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나요? 부의 개념, 부를 증식시키는 방식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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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

 

김과장이 계속 말했다.
“세계에서 미국에 빚을 가장 많이 꿔 준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누가 더 잘 살죠? 세계 제일의 채무국 미국인은 흥청망청 돈을 잘 쓰며 잘 사는데, 세계 제일의 채권국 일본인은 하꼬방 같은 집에서 개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러니를 설명 좀 해주시죠."
사실 다나카도 이 부분에 있어서 김과장의 지적에 동감하고 있었다. 왜 무역 흑자도 일본이 최고, 미국에 꿔 준 돈도 일본이 제일 많은데 왜 사는 것은 만년 적자?채무국인 미국이 훨씬 더 나을까?
우선 부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의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는 ‘정보와 지식’을 더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요즘에는 ‘창조성’을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파악하는 ‘창조적 경제’이론도 등장하고 있다. 다나카는 경제잡지 비즈니스 위크가 지난 2000년 8월에 소개한 ‘창조적 경제(Creative Economy)’라는 특집 기사 등을 통해서 이런 개념을 이해하게 됐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 잘 사는 이유는 바로 창조성에 기반을 둔 경제로 전환, 세계 제일의 창조적 경제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창조성에 대한 투자는 곧 R&D(연구와 개발) 투자로 반영되는 데 미국의 R&D 투자는 세계 1위(40%)다. 또 세계 창조적 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고도 있다.
다나카는 얼마 전 만난 일본 국제경영학 전문가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물질 문명에선 누군가 파이 한쪽을 차지하면 자기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법입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정신과 지식에서 무한대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플러스 섬’ 세계로, 상쟁(相爭)에서 상생(相生)으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윈-윈(win-win)게임이죠.
그러므로 21세기엔 ‘스톡(stock)’은 힘이 되지 못하고 ‘플로(flow)’가 중요합니다. 스톡 시대때 빚을 내서 챙겨 두었던 엄청난 부동산들은 플로 시대엔 몇 푼의 달러보다도 맥을 못 추고 거품이 꺼지면 오히려 파국의 재앙으로 귀결되므로 자산의 소유보다는 관리가, 공장 확보보다는 우수한 인력과 무형 자산 축적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부를 축적하려고만 하는, 만사를 경제적 척도로 재려고 하는 일본적 태도는 분명히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다. 그런 다나카의 고민을 알아차렸는 지 김과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산업화를 끝낸 서방 사회에선 고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점차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강조되고 경제성장보다 삶의 질에 더 높은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신 점차 자기 표현, 주관적 행복,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경제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한국인들의 경제관, 베짱이적 소비행태가 미래에 더 나쁘지 않을테니까요. 앞으로 세계는 ‘금전적인 물질주의자’가 주류를 이루는 세계는 아닐 것입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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