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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희의 산중일기

죽음은 또 다른 시작

45세 목사의 평화로운 소천을 듣고

최찬희 작가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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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는 버클리에 있는 ‘버클리 은혜 장로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본다. PCA 북가주 노회에 속한 이 교회는 이십오 년의 역사가 있다. 신도 수가 많지는 않지만, 교인들 간에 결속력이 강하고 각자 직분에 맞춰 헌신하는 모습이 은혜로운 교회다. 멀리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생명의 터전이다.

오늘은 설교 중에 큰 교회에서 부목으로 사역하던 중 새 교회를 개척하려고 나갔던 제임슨 스톡하우스 목사님께서 새벽에 소천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작년에 왔을 때 암 투병 중이어서 교인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놀람과 충격의 술렁임 속에 목사님의 애틋한 기도가 이어졌다. 

유족인 여덟 살 맏이를 비롯한 네 자녀와 부인 크리스티를 향한 위로와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가 깊은 날숨과 함께 내 입술을 움직였다. 큰 슬픔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들을 이끌어주시리라 믿는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죽음’이라는 충격과 혼란의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제임슨 목사는 떠나고, 그가 이루려던 꿈도 사라졌다. 나를 비롯해 남은 자들 또한 언젠가 가야 할 그 길을 떠난 것이다. 과연 내게도 그날이 도달하면 어떤 심정이 될까. 문득, 이 세상의 모든 관계를 끊고 떠나야 하는 생의 마지막 어두움이 엄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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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의 부목으로서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새 성전을 개척하려던 제임슨 목사! 그를 위해 모든 사람이 기구했던 치유의 기도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어떤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그의 부인의 글에서 곧 알게 되었다. 45세에 세상을 떠난 제임슨 목사의 아내 크리스티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가 떠나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어젯밤, 자정 직전에 저는 제임슨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말은 그 순간의 고통과 사랑과 슬픔과 감사를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의 심장은 마지막으로 희미한 숨을 들이쉬며 멎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심장이 계속 뛰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라고 느낄 때까지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포옹을 하며 많은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치유에 대한 기도가 응답 되지 않음이 분명했던 순간에도 하나님을 더 많이 신뢰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아멘, 또는 ‘그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가 정말로 사라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보내는 순간이 ‘거룩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웠다!’라고 말했다.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슬픔을 그렇게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제임슨은 절망이 아닌, 평온과 기쁨 속에 놓여 있었음이 느껴진다. 

그는 고통 속에 방황하고 있는 가련한 길손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의 권세를 이긴 환한 얼굴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음이 자명하게 다가온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진실로 빛나는 사랑 안에 들어갔음을 느낀다. 그 사랑의 빛은 그를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한 가족에게도 임했을 것이다. 그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시고 주 안에 그가 거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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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백 세 인생을 사는 김형석 교수의 글이 중앙일보에 크게 실렸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령 명사인 그는 백 년을 살면서 만난 친구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윤동주 시인을 꼽았다. 만주에서 중학교를 같이 다닌 윤동주 시인이 27세에 옥에서 요절해 불쌍하기 짝이 없었는데 수십 년 후에 보니 제일 성공한 사람이 되었더라고 한다. 

김형석 교수가 말한 ‘성공’은 암울했던 시대에도 별을 노래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한 그의 영혼이 담긴 시에 있음을 말하리라. 영혼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시인의 순결한 영혼은 그의 시에서 발현하여 우리들의 가슴에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마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이후에도 계속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는 주님과 함께 집에 있습니다. 그는 부서짐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사랑과 친절과 자비의 하느님과 마주했습니다. 그는 더는 고통이 없는 천국에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 가에 대한 확신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감싸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두근거리는 발걸음을 떼었음이 분명한 그는 아프지도 않고, 절망이나 위험도 없이 빛나는 본향을 향하고 있다. 어떠한 의심도 없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느낌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오롯이 남는 그 무엇, 비로소 보이는 그것이 영혼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인간을 감싸고 있는 모든 상황을 배제한 뒤에 홀연히 나타나는 영혼, 그 순결 무구함을 주신 분께로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분께 다시 귀의하는 그 순간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이란 모르는 것에 대한 의문일 뿐, 확신할 수 있는 앎 앞에서는 오직 기쁨으로 나아갈 뿐이다.


만약 우리에게 죽음이 없다면 인생은 어떤 식으로 이어질까. 결승선이 없는 마라토너처럼 영원히 뛰어야 할 육체만 존재한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비참할 것 같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영혼을 노래할 수 있고 삶은 보다 은유적이고 창조적이 되었다. 

나 또한 죽음이 확연히 내 앞에 와 있음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먼 곳에서 평화롭게 달리던 죽음의 기차가 갑자기 내 앞에 멈춰 선 것 같은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삶이라는 실체가 죽음이라는 필연성과 맞닿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 속에 신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은 구름이 흐르고 있는 스크린처럼 깨끗하고 맑았다. 

그때, 내 속에 이미 빛으로 와 계신 그분을 발견하고 오열에 빠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분은 이미 내 안에 와 계셨던 것이다. 비로소 나의 본질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았던 순간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완전한 영적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두려움을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신의 존재를 체험하는 아이러니한 연결고리가 바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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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는 악의 세계에서 이어진다. 그 속에서 생명이 잉태될 때부터 주어진 영혼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랑을 깨닫기만 하면 그는 신이 주신 영혼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되는 또 다른 나의 길이요, 다만 다른 곳에서 함께 하는 시작임을. 마치 시간을 반복하여 겪다 보면 알게 되는 참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때 내가 그렇게 두려웠던 것은 내가 모르고 그랬음을 자각한다. 그 이슬 같은 영롱함이 목사님을 천국으로 이끌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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