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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스토리 (26)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니…

쇼핑욕구가 사라지다

‘오늘은 또 뭘 입나….’

옷장을 열고 한참 서 있었다. 눈앞에 줄줄이 걸려있는 건 티셔츠와 바지건만, 선뜻 하나를 고를 수가 없었다. 개수는 많아도 즐겨 입는 건 정해져 있다. 면티와 청바지를 꺼내고 카디건을 걸쳤다. ‘그러고 보니, 옷 쇼핑을 한 지 꽤 오래 지났네.’

옷 사는 걸 즐겼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거리 두기 하는 심정이랄까. 시선과 생각을 돌릴 대상을 찾았다. 잠깐이라도 고민에서 벗어나 딴생각을 하다 보면, 화가 조금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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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선 천불이 났다. 그럴 땐 잠시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이가 잠든 저녁, 온라인 쇼핑몰을 휘젓고 다녔다. 새로 나온 디자인이 있는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나 없나 살피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쇼핑몰 모델처럼 날씬하지는 않지만, 그 옷을 입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택배가 오길 기다렸다. 택배가 오면 다시 쇼핑몰에 접속하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다.

보상심리도 작용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상심리는 ‘정신적으로 억압된 욕구를 다른 형태로 보상받으려는 마음’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이 정도는 살 수 있잖아.’ 일하는 엄마라서 포기하고 참아야 하는 만큼, 딱 그만큼 다른 무언가로 채울 수 있길 기대했다. 그게 무엇이든 보상받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다섯 살 아이가 사탕과 초콜릿, 장난감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유의미’하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이런 삐딱한 마음은 ‘물욕’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정체를 드러냈다.

그렇게 사들인 옷은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옷장에서 몇 번 나오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물건이 배달돼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고르면 되니까. 어느 정도 사고 나면, 그만 사고 싶을 줄 알았다. 그런데 끝이란 게 없었다. 옷을 사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상품을 비교하고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하고 돌아서면 다시 물욕이 고개를 들었다. ‘사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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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옷장 속을 들여다보다가 알아챘다. 몇 달째 옷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가 필요하냐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뭘까, 왜 사지 않았을까, 왜 갑자기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을 걸까. 도대체 왜 물욕이 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요즘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틈만 나면 생각에 잠긴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잊어버릴세라, 휴대전화를 꺼내 메신저에서 ‘나와의 채팅’을 누른다. 생각 노트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걸듯,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동하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틈만 나면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나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곱 달째. 보상심리로 인한 물욕이 몇 달째 요동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 오감은 마비됐다. 글감을 발견하면 제목과 짜임을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리드를 매력적으로 뽑아낼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에피소드는 없을까, 찾아봤다. 이 순간은 짧을 때가 잦다.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누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못 듣거나 옆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아이가 잠든 후 단편적인 메모를 한 편의 글로 엮는다. 이때만큼은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한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책과 사전을 뒤지면서 실마리를 찾고, 다시 키보드를 누른다. 내가 써 내려간 단어와 문장에 파묻혀 씨름하다 보면 허리가 신호를 보낸다. 쉬엄쉬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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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설명한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는 심리적 상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 한 곳에 모든 정신과 감각을 집중하는 순간이다. 몰입한 사람은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칙센트미하이는 단적으로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키를 타고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올 때는 몸의 움직임과 스키의 위치, 스치는 바람, 진행 방향에 놓인 장애물 등에 온 정신과 감각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잠깐 한눈을 팔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상태, 바로 이 순간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마다 몰입의 대상은 다르다. 나의 경우, 경제활동으로서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글 쓰는 활동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만족을 느꼈다. 직장인과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이라서 좋았다. 주어진 역할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숨통을 트는 일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옆에서 ‘넌 글을 써야 해!’라며 강요하거나 기한을 정해주면서 그때까지는 글을 완성하라고 했다면, 한 달도 못가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오롯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찾아낸 진심이었기 때문에 틈만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퇴근 후에는 노트북을 쳐다보지도 않던 내겐 무척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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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잦다. 그럴 땐, 스스로 질문한다. 몰입을 경험하는 건 자신과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또 빵을 구우면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아니면 달리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만족을 느낀다. 지금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몰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내용을 확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족을 느끼는 심리적 요소들이다.
 

-도전적인 일인가
-집중하는가
-뚜렷한 목적이 있는가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가
-쉽사리 몰입하는가
-주체적으로 활동하는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가

 

“몰입은 인생을 더 즐기고 행복하게 살게 한다. 온종일 몰입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삶의 질이 향상된다. 칭찬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없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한다."

 <칙센트미하이>


<몰입하기>
 
-무엇을 할 때 마음이 설레는가
-지금 당장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일(활동)에 도전하고 싶은가
-일 년 동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몰입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 자료]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개정판(물푸레, 2020)
긍정심리학-행복의 과학적 탐구(학지사, 2008)
몰입-인생을 바꾸는 자기혁명(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글ㅣ 김명교
12년 차 교육 기자다. 집에선 다섯 살 달콩이의 엄마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취재원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잘 키워보자’ 했지만, 워킹맘의 현실 육아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무너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am-un)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를 일으키고 마음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글을 쓸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글 속에 찰나를 담아내고 싶어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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