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깜깜한 새벽, 도심 한복판의 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하는 한 대의 차가 있다. 차에는 스피드를 즐기는 건장한 흑인 남자와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듯한 중년의 백인 남자가 타고 있다. 규정 속도를 훨씬 넘기며 달리는 그들의 차를 경찰차가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운전석에 앉은 흑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피드를 즐기기 바쁘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신나게 도로를 달리는 그들, 심지어 경쾌한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며 질주본능을 만끽한다.
영화 〈언터처블: 1퍼센트의 우정〉은 소득 상위 1퍼센트의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의 부랑자인 흑인 남자 사이에 싹튼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조종사가 딸린 전용기와 억대의 승용차를 소유한 상류층 남자 필립은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사고로 목 아래로 모든 감각을 잃게 되고 사랑했던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 자신을 대신해서 손발 역할을 해줄 도우미를 뽑지만 다들 그의 괴팍한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두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둔다.
그러던 어느 날, 흑인 부랑자 드리스는 생활보조금을 받을 명목으로 도우미 채용면접을 보기 위해 필립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단도직입적이고 무식하지만, 자신을 보통의 사람처럼 평범하게 대하는 드리스의 태도에 필립의 마음은 움직인다. 드리스는 장애를 가진 필립을 안쓰럽게 바라보거나 기분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거침없이 그를 대한다.
“그 친구는 내가 장애인이란 걸 잊게 해줘. 나를 보통 사람처럼 대하거든."
중증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필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과 평가하는 태도는 필립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왜곡하게 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며 어설픈 위로를 보내고 특별대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정 필립이 원했던 것은 어떠한 편견 없이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진심이었다. 드리스는 마치 ‘츤데레(무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처럼 장난스럽고 투박하지만, 필립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혹은 동료나 친구로부터 나를 생각하는 진심을 느껴본 일, 영화의 주인공 필립처럼 신체에 장애가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부족한 존재들이다. 공부에도, 일에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데도 서툴다.
그런 우리를 누군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줄 때 우리는 더이상 작은 사람으로 머물지 않는다. 따뜻한 눈빛에는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너와 늘 함께 있다’라는 메시지를 마음으로 전달받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곪아 있던 고통과 외로움이 하나둘 흩어진다.
왜 내 주변에는 좋은 친구가 한 명도 없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친구라는 존재를 내가 심심할 때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힘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정작 그들이 힘들어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친구란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에 불과했다. 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친구를 대하는데 상대가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어찌 보면 20대의 내가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내게도 삶의 변화가 찾아오고, 관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는 기회가 생겼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담을 통해 내면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니 타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 샘솟았다.
지금 나에게는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살아온 배경과 나이, 성격도 각양각색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서로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상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인정할 때 친구는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나는 친구가 없어도 돼’라며 혼자 있기를 선택한 이들에게 나는 인생에서 친구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다. 친구는 내 생각과 존재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또 다른 내 모습이며 삶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를 통해 삶을 배우며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만나야만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대화가 통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친구를 나의 필요에 의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존재 대 존재’로 대등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다.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저절로 사람들은 당신을 찾게 돼요. 정말 그렇게 돼요."
신기하게도 모든 내담자가 상담을 마치고 난 후 대인관계가 훨씬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자신이 매번 먼저 연락을 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먼저 만나자며 연락해온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타고났다. 당신의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어 외롭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먼저 건네 보자. 상대의 부족함을 알아주고 내 안의 진심을 전달할 때 새로운 관계의 문이 열린다.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줄 ‘결정적인 한 사람’이 없어서다.
누군가 나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는 필요하다.
김소원,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 중에서
*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필자의 저서 《적당한 거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