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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불우한 환경 극복한 남자가 겪는 고통

엄마-아내 갈등 속 내린 결정은?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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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요.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 초조함이 가라앉아요. 마음이 이내 진정되죠."

서른 세 살 직장인 지훈 씨는 상담실 바닥에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쉬었다. 애꿎은 상담실 의자 손잡이를 손톱으로 긁으며 초조한 마음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동안 담배는 지훈 씨를 진정시켜주는 안정제 같은 존재였나 봐요.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기 힘드니까."

“일곱 살로 돌아간 것 같아요. 딱 그때의 마음이에요. 부모님이 맞벌이셨거든요. 집에 혼자 있는데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병아리를 한 마리 키웠어요. 애정을 줄 대상이 필요했거든요. 세상에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병아리가 함께 있어서 덜 외로웠던 것 같아요." 

지훈 씨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에 충분히 머물도록 나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어린 지훈 씨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 나 또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서 그 마음이 어떨지 이해가 되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지훈 씨가 어렸을 때부터 외도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반복된 외도로 인해 신경이 늘 날카로웠다. 남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은 아들인 지훈 씨에게 가기 마련이었다. 

지훈 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감정받이 노릇을 해야 했고,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공부도, 숙제도 알아서 하는 모범생으로 지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화를 덜 내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어갈지 노심초사한 그였다. 부모님이 방문을 닫고 싸우실 때면 병아리를 안고 방문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어린 지훈 씨는 부모님의 싸움을 말릴 힘도, 아버지에게 대항할 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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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모님은 지훈 씨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혼을 하셨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소년에게 부모의 이혼은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부모의 이혼, 양육권과 돈 문제 등 어른들의 싸움으로 인해 지훈 씨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녔다. 

이른 나이에 떠밀려진 독립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를 책임져줄 사람도, 학원을 알아보거나 도움을 줄 어른도 없었다. 오로지 공부해서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것만이 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훈 씨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가 원했던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 어머니였지만, 아버지에게 평생 상처만 받고 지낸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지훈 씨의 마음을 붙잡았다. 이후로 지훈 씨는 회사를 다니며 어머니와도 원만히 잘 지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뿐, 또 다른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의 질투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어머니의 불평불만과 심통이 종국에는 부부갈등으로 번졌다. 마음이 여린 지훈 씨는 어머니의 편에도, 아내의 편에도 서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자신이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인 아내의 편에 서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지훈 씨의 어머니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부었고 연을 끊는다는 말을 하고 그 후론 아들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지훈 씨가 상담실을 방문한 건 그즈음 이었다. 그는 식은땀이 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의 신체화 증상을 호소했다. 공황발작은 없었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분명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며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지훈 씨의 사례는 안타깝게도 상담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경우다. 아버지의 잦은 외도로 인해 어머니는 배우자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고 분노와 불안감을 가장 만만한 대상인 아들에게 투사한다. 


거기에 더해 아들을 또 다른 남편으로 의지하며 아들, 며느리와 병리적인 가족관계를 맺는 형태. 머리로는 장성한 아들이 대견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룬 것에 대해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속에서는 며느리를 질투하고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역동(drive)이 어머니의 무의식에서 작동되는 것이다. 

지훈 씨는 상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호소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돌봐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보호자 행세를 하려는 어머니에게 화가 났고, 어른답지 못한 행동으로 자신의 아내를 괴롭히는 모습에 실망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자신이 그토록 함께 있고, 사랑받고 싶었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자신마저 어머니를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지훈 씨를 괴롭혔다. 

“선생님, 차라리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음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텐데…."

지훈 씨는 상담을 받는 중에도 상담자인 나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상담자에게 전이(transference)되어 그러한 것 같았다. 비일관적이거나 유아적인 어머니가 아닌 안정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holding), 하지만 경계를 지키는 새로운 대상표상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했다. 더불어 지훈 씨가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이해하도록 돕고 어머니와 물리적, 정서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임을 자각하도록 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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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지훈 씨와 나는 매주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심리상담은 어릴 적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사랑과 양육을 상담자와의 관계 안에서 재경험하는 일이다. 어머니에 대한 상(image)을 재정립하고 의존에서 독립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지훈 씨와 나는 앞으로 복잡다단한 여정을 함께 걸을 것이다. 휘청거릴 때는 손을 잡아주기도, 때로는 혼자서 걷도록 옆에서 바라봐주고 지지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 때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조력하는 것이 내가 상담자로서 할 일이다. 지훈 씨의 심리적 독립을 응원한다.

* 이 글에 소개된 사례는 내담자의 privacy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고 일부 상담내용은 각색했습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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