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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늘 많은 물건 사고 집에 쌓아두는 은경씨

그녀의 ‘저장강박증’은 왜?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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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은경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마다 꼭 집 앞 대형마트에 들른다. 딱히 살 것이 없는데도 1층의 화장품 코너를 비롯하여 옷 가게, 액세서리 가게를 둘러보고 몇 가지를 산다. 지하1층 식품관에 들어서면 그녀가 좋아하는 스낵과 야식 메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밤에 TV를 보며 먹을 과자와 맥주, 그리고 주전부리들을 카트에 담는다. 당장 필요 없는 음식 들고 언젠가는 먹겠지 하며 카트에 쏟아 붓는다. 끌리는 대로 사다 보니 50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녀의 집에는 사놓기만 하고 먹지 않는 과자, 라면, 홈쇼핑에서 주문한 영양제, 화장품, 청소도구들이 가득하다. 어떤 때는 물건을 주문한 사실조차 잊고 또 주문해서 같은 물건이 반복해서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은경씨는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고르고 결제를 하는 순간에만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통제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물건을 사들였다. 이런 병리적인 소비습관 때문에 집은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너저분하게 쌓여 갔다. 

심지어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도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놓은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 물건도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물건들을 보관해두는 것이다. 그녀는 저장강박(Compulsive hoarding)을 가진, 이른바 호더(Hoarder)였다. 

호더들은 쇼핑을 하고 집을 물건들로 가득 채움으로써 심리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일도 쉽지 않다. 마음에서 불안감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은경씨가 상담실을 방문한 것은 그녀의 충동적인 소비와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걱정하던 친한 친구의 권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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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은 시골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느라 바빠서 은경씨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직 사랑받고 보살핌 받아야 할 나이에 부여된 엄마 역할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은경씨는 고사리손으로 어린 동생들을 위해 밥을 짓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김치와 함께 먹였다. 동생들을 다 먹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밥통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보리차를 붓고 끓여서 한 끼를 때웠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겨울에도 보일러를 자주 틀수가 없어서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동생들과 이불 속에서 함께 몸을 녹였다. 그때 경험했던 혹독한 추위 때문에 지금 은경씨는 혼자 사는 집에 바닥이 펄펄 끓을 정도로 보일러를 틀어놓는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도망치듯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오랫동안 가족은 마음의 짐 같은 존재였기에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다. 친구들처럼 부모님이 보내주는 해외연수도 가보고 싶었고 예쁘게 꾸미고 나가서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도, 마음을 터놓을 남자친구도 없었다. 

그녀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물건을 사들이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액세서리나 간식거리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그녀가 사는 원룸은 수많은 옷과 음식,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로 빼곡히 채워져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다. 

실제로 나에게 심리상담을 의뢰하는 이들 중에는 은경씨와 같은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버리지 못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거나 충동적으로 폭식하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등의 섭식장애(Eating disorder)를 보이기도 하며 무분별하게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등의 성적인 문제를 호소하기도 한다. 

증상은 모두 상이하지만 근원은 모두 같다. 마음속의 공허함과 결핍을 물건 혹은 사람으로 채우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중독적 행위를 하며 불안을 통제하고자 애쓴다. 

어린 시절 의미 있는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이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쏟기 쉽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뉴햄프셔대학의 리메이 교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은 사랑과 인정에 대한 갈망과 매우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을 때 안정감을 느끼지만, 인간관계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물건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부족한 안정감을 보상받게 된다."

은경 씨와 같은 저장 강박 혹은 신경성 폭식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원했던 물건이나 음식이 자신의 심리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친밀하고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동성이나 이성 모두 괜찮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하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와 의미 있는 관계를 경험해야 병리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올라오거나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으로 채우고 싶을 때, 잠시 충동적인 행동을 멈추고 내 마음속에 올라오는 허기진 느낌을 알아차리자. 그렇게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때 느껴지는 감각이나 느낌을 노트에 적어보고 나의 욕구를 인식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내가 사려고 했던 물건의 목록을 재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이때 자신에게 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물건이 생존에 꼭 필요한가?

이 물건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

이 물건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이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는 어떤 감정이 드는가?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간절히 원하는가? 

자신의 욕구와 느낌을 알아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는 내면의 감정에 머무르지 못한 채 다른 방법(음식, 쇼핑, 운동, 일, 섹스)으로 감정을 해소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외로움, 공허감, 열등감 등의 감정을 해소하기 어렵다.  

자신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주고 보듬어주어야 비로소 서서히 물러간다. 내면의 실존적 두려움과 만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내 안의 두려운 감정과 마주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감정이 싹트게 된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_카를 구스타프 융(분석심리학자) 

*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필자의 저서 《적당한 거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내담자의 privacy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고 일부 상담내용은 각색했습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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