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내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에 관해 연구하고 상담하는 일을 하시니 살면서 쉽게 방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겠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물론 흔들림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늘 갈등하고 방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삶은 방황의 연속이니까요"라고 덤덤히 이야기하곤 한다.
상담가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의 마음이나 삶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깊이 연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저런 방황을 하는 것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5년 후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출금은 언제쯤 다 갚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하는, 평범한 보통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가장 슬픈 때는 최선을 다해 사는데도 눈앞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이고 어느 누구도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지 않을 때이다. 부모님이나 선배, 가까운 친구들에게 고민을 얘기해도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삶이 전부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나를 이해해주기란 쉽지 않다. 그들도, 나도 나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것은 결국 ‘나’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듣게 된 가수 이소라의 7집 Track 9가사에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으로부터 부여받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방황과 고독이 담겨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서 살게 해.
내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선택으로 ‘나’라는 존재가 탄생했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어떤 이름과 환경을 부여받은 것은 어찌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막막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세상에 던져졌다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수월하고 덜 힘들 텐데 말이다. 인간은 좋든 싫든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역설한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선택도 없이 그저 던져진 존재이며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다.
변화의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여러 대중매체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강연하는 이들 중에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도 있고, 정신과 의사나 종교학자도 있다. 강연의 내용이나 콘셉트는 각양각색이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제대로 알라는 것’
20대에 그 말을 들었다면 도대체 자신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고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의문을 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상담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왜 중요하고 삶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을 알면 ‘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분명하기에 남들의 기준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지 않게 된다. 또한,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기능적으로 자신을 활용할 수 있다. 어느 곳에서 살지, 어떤 사람들 속에 있을지를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알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이 있다. 어떤 이는 액티비티한 스포츠를 즐길 때 행복하고, 또 어떤 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행복감도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심리상담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마음을 치료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맞는 얘기다. 하지만 심리상담을 통해 얻는 효과는 그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 년 동안 개인상담을 진행하고 지난주에 마지막 상담을 마친 한 30대 여성 내담자는 나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제가 힘을 빼고 저답게, 솔직하게 살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제 비로소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저는 이런 저 자신이 참 좋아요."
상담을 하며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순간이 있는데 상담이 종결되고 나서 내담자로부터 이러한 반가운 문자를 받을 때이다.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는 상담을 통해 잊고 있었던 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내 모습을 숨길 필요 없고 타인과 비교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불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척’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방황하지 않는 삶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그들이 흠뻑 공감할 수 있을지 밤새 자판을 두드려가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서른을 맞는 것도 처음이고, 사회생활도 처음이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맞는 것도 처음이다. 그렇기에 인생은 늘 물음표다. 가는 길마다 물음표인 인생에서 조금 덜 방황하는 방법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시력을 정확히 알면 그에 맞는 안경을 끼고 선명한 시야로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불안정한 세상에 무작정 던져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용기와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필자의 저서 《적당한 거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