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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고아에다 전신마비 알콜 중독자의 희망 찾기

남에 대한 용서보다 나에 대한 연민부터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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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워리

 “난 1951년에 태어났어요. 성 빈센트 병원이었죠. 

난 생모에 대해 세 가지밖에 몰라요. 

아일랜드계 미국인에 빨간 머리, 학교 선생이었어요. 

아, 맞다. 그녀는 날 원하지 않았죠."

고아, 알코올 중독, 자동차 사고, 전신 마비. 이보다 더 삶이 절망적일 수 있을까 싶은 남자, 존의 삶이다. 존 캘러핸의 치유와 성장을 그린 영화 〈돈워리〉를 보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버거운지, 그럼에도 인간은 그가 가진 상처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무기력하고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주인공 존은 우연히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AA)을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도니를 만난다. 도니는 중독치료 모임의 리더다. 매주 그들은 같은 곳, 같은 시간에 모여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상처를 털어놓는다. 어떤 이는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날카로운 비판의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존은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본다. 

몇 주간은 중독치료도, 그의 삶도 지지부진한 채로 생기 없이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아누’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난다. 아누는 존이 겪은 상실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준다. 그가 전신 마비인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존을 정상인처럼 대한다. 존은 아누의 도움으로 조금씩 삶에 활기를 찾아가지만, 그것도 잠시,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에 의존한다. 불구의 몸에 상처를 가득 짊어지고 사는 존. 누구도 그의 상처에 온전히 공감해주고 이해해줄 수 없었다. 그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저절로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아요. 매일 그 상처들과 씨름해야 해요. 

어떤 고통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어떤 수치는 영원히 남아 있어요. 

그걸 이겨내지 않으면 당신이 죽어요" 

영화 속에서 그의 중독치료를 돕는 도니가 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마음의 상처가 있다. 그것을 꽁꽁 끌어안은 채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평생 그 상처를 외면하며 살기도 한다. 그렇게 외면하고 쳐다보지 않으면 상처들이 희미해져서 사라지면 좋겠지만 상처는 결코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강한 트라우마를 남긴 경험일수록 몸에 깊이 각인된다. 관계 속에서 경험한 상처는 몇 년 뒤, 혹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 또 다른 타인과의 관계에서 재 경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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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마흔이 넘으면 치유되지 않은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잘 지내야 한다고. 마음속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것과 잘 지내는 일.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내게 상처 준 이를 용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그 대상이 모르고 한 일일지라도 내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면 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끓어오르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부모가 나를 혼자 둔 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은 일, 고통스러운 감정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일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경험일수록 더욱 깊이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 준 이를 용서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No를 택하겠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물리적 학대, 성폭력, 유기된 경험은 더더욱 용서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종교의 힘을 빌려 기도를 해보아도 마음은 결코 상대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실 타인을 용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병들고 취약해지는 이유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다. 내 마음을 병들도록 내버려 둔 일,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했던 일, 세상이 나를 모두 외면할 때 나조차 나를 외면한 일. 상처로 뒤범벅이 된 내 마음을 돌봐주거나 지켜주지 않은 일. 마음의 상처는 내가 나를 용서해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음에도 여태껏 잘 살아온 나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누구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일구어온 삶을 인정해주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고 따뜻하게 바라봐줄 때 우리는 이전의 상처 입은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영화 〈돈워리〉의 주인공 존은 스스로를 용서하며 비로소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었다. 원망과 저주를 퍼붓던 마음은, 어머니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물음으로 대체되었다. 물음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존에게는 그러한 물음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사실 존이 마음속 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한 것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 나 또한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들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심리치유가 조금씩 일어나면서 스스로에게 연민과 관대함이 생길 때 타인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삶을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타인이 상처를 준 일이 아니다. 그러한 상처로부터 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이 더욱 아프다. ‘내가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구나.’ 하는 자기공감(Self-Compassion)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윤활유이면서 삶을 건강하게 일구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상처는 아픔으로만 바라볼 때 찢긴 흔적일 뿐이지만 공감이라는 연료가 더해지면 그것은 상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이 아닌, 내가 나를 지켜주는 삶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자신과 잘 못 지내는 사람은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인 나와 잘 지내는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_김소원, 《적당한 거리》 중에서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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