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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당신이 진짜 힘들때 지켜줄 버팀목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은 '철학책'에서 찾았다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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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는 어느 50대 중년 여성이 삶에서 겪는 위기와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나탈리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의 철학교사이다. 그녀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남편, 그리고 어엿한 성인이 된 딸과 아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전화해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어머니. 이 모두는 그녀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하나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극심한 신경증을 앓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곁에서 자신만 사랑해주리라 믿었던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가 쓴 책의 개정판 출간마저 계획이 어그러지고 오랫동안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온 특별한 제자 파비엥으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말을 듣는다. 때로 고통은 한 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한다. 나탈리는 자신의 삶에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암흑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내가 놓여있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은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영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중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요소는 ‘철학’이다. 삶이 나탈리를 뒤흔들 때도 그녀는 철학책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 현실의 삶은 철학으로 설명하기에 모호하고 대책 없는 일투성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잡아줄 유일한 버팀목은 철학적 사유였다. 남편이 집을 떠날 때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그녀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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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행동은 마치 현실에서 마주한 고통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녀는 한꺼번에 닥친 외부사건들로 인해 충격을 받았고 충분히 아팠으며, 자신의 삶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으려 노력했다. 때론 그녀의 어머니가 남기고 간 고양이를 꼭 안고 참아온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과 덤덤히 대면했다. 

삶에서 다가오는 것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를 잠식시키고 혼란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사건은 때로는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렇게라도 해보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물리적인 준비를 해놓는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삶에서의 상실경험, 예를 들면 건강의 악화, 금전적 손실, 배우자의 외도, 의미 있는 타인의 죽음 등은 내가 오랫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나의 민낯을 보게 해준다. 

사회가 요구한 페르소나(Persona: 사회적 역할, 가면 인격)에 함몰되어 사느라 잃어버린 본연의 나를, 원하든 원치 않든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아픈 일이다. 우리는 상실을 겪을 때 비로소 본질에 다가간다. 

내 삶에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것들을 마주할 때 나를 잃지 않고 담담히 서 있을 수 있는가? 삶의 위기 순간에 과연 내 손에(혹은 마음에) 무엇을 쥐고 갈 것인가? 

우리의 삶은 언제나 변화하고 나아간다. ‘다가오는 것들’ 속에서.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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