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된 많은 사람들

우린 서로 얼마큼 알고 있나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2-21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shutterstock_739033579.jpg

지난 해 개봉했던 영화 <벌새>를 보다가 극 중에서 한문 선생님으로 나오는 영지가 제자인 은희에게 알려주는 한자성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능히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명심보감의 ‘교우’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지가 칠판에 차분히 써 내려간 글자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문득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는 일 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최근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안부를 묻지 않은 이들도 있다. 주소록에 있는 사람 중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가족, 친구 혹은 지인들은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까? 나 또한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명심보감의 글처럼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마음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만약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그런 사람이 둘 셋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전생에 엄청나게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일 것이다. 

shutterstock_1550702165.jpg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우리는 SNS상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타인과 소통을 한다. 어떤 때는 현실에서의 인간관계가 아닌 사이버상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기에 서로 너무 깊숙이 알려 하지도,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만큼의 정보만 공유하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각자의 취향이나 견해가 맞지 않으면 기꺼이 ‘차단’ 혹은 ‘언팔(unfollow)’을 클릭한다. 단 몇 초 만에 그와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이다. 깡통에 든 인스턴트 음식을 먹다가 입에 맞지 않으면 뚜껑을 덮고 냅다 버리듯 인간관계 또한 쉽게 취하고 쉽게 내버려진다. 

명심보감이 고려 시대에 쓰인 것을 보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에 빗대어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이 열린다. 열 마디 말을 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한마디 말을 잘 듣는 일이다. 때로는 ‘당신이 충분히 그럴 만 하다’라며 수긍하는 눈빛이 어떤 언어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타인과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지만 늘 외롭다면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해서일 것이다. 바쁜 현실 속에서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공감이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삶에서 그보다 더 서둘러 해야 할 과업은 없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
더보기
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더보기
과유불급 (過猶不及) 넘치지 않게 사랑하기
“슬픔, 미움, 열등감도 존중받아야 한다” 원치 않는 감정 마주보기… 영화 〈인사이드 아웃〉
우울증이 주는 축복과 선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질문 3가지
상실을 통해 얻게 되는 성장 인간의 이중성을 솔직하게 바라볼 때
느긋한 남편의 성격이 좋아 결혼했으나… 날 힘들게 하는 마음 속 ‘가혹한 어머니’
인생의 황금기가 바로 지금인 이유 “잘나갔던 그때로 돌아가면 행복해질까?”
상처받은 어린 시절, 사랑없는 결혼 생활 심리적 상처와 열등감 극복하려면…
'비대면' 시대의 여러 얼굴들 사회적 관심과 공감 갖기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통해 깨닫다 우리는 사랑을 배워가는 미완성 존재
내게 전화 주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될 때 '이런' 사람이 되면 당신을 찾을거예요
우리는 대개 자신의 결핍을 남 탓으로 돌린다 인간관계 갈등에서 벗어나는 법
“내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유부녀였다” 얼떨결에 받은 ‘축하’ 샴페인의 의미
중고 신인 ‘싹쓰리’가 주는 ‘복고’ 열풍 코로나 시대, 기쁨과 슬픔 다루기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 카페인 끊을 때 되지 않았나요?
간난 딸을 버리고 감옥을 선택한 이유는? 원치 않는 과거가 불쑥 찾아왔을 때
불우한 환경 극복한 남자가 겪는 고통 엄마-아내 갈등 속 내린 결정은?
늘 많은 물건 사고 집에 쌓아두는 은경씨 그녀의 ‘저장강박증’은 왜?
공부 잘하고 착하게 자란 사람의 역설 왜 늘 칭찬 못받으면 노심초사하죠?
어머니와 딸이 기억하는 진실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을 알라. 왜?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눈치 안보고 나답게 솔직하게…
코로나 번아웃 시대 자영업자 워킹맘의 고민 “신경과민, 불면증으로 쓰러질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 하루 몇차례 ‘피카’ 타임 갖는 이유? 쉼-조화-균형 위한 ‘위대한 멈춤’
혹시 당신도 경희씨 같은 사람은 아닌가요? ‘착한 아이’ 교육의 나쁜 선례
〈부부의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5가지 교훈 결혼 생활이 외로울 때, 배우자 문제가 아니라 내 탓?
“손수건은 빌려주기 위해 갖고 다니는 거야.” 영화 〈인턴〉에서 벤의 대사
아이를 더 키울 수 있나요? "NO" 육아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내 모습 때문에?
고아에다 전신마비 알콜 중독자의 희망 찾기 남에 대한 용서보다 나에 대한 연민부터
가장 매혹적인 이는 불륜녀가 아니라 새로운 ‘나’다 〈부부의 세계〉에서 바람피우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
내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다른 집 아이라면?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을 기억한다
평범한 은행원 주부의 10억 횡령 사건 실화 평온한 삶 대신 쾌락을 찾는 이유는?
우리 부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융 심리학으로 본 〈부부의 세계〉
여행갈 때 짐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 이유 짐을 줄일수록 인생의 짐도 가벼워진다
인간은 불안할 때 혐오할 대상을 찾는다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사회적 연대’ 갖기
당신이 진짜 힘들때 지켜줄 버팀목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은 '철학책'에서 찾았다
코로나 시대 '마음의 면역력’ 키우기 자기통제감 찾는 7가지Tip
도시락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배달되면서 벌어진 일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로 이끌 때도 있습니다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된 많은 사람들 우린 서로 얼마큼 알고 있나
행복은 특급호텔 뷔페 식사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