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 교수를 지내고 두 차례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년퇴직한 후 7년째 강원도 속초, 고성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그는 ‘은퇴 후 시골 살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담히 풀어 놨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발췌요약)
시골살이의 장점은 우선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자연의 혜택을 들 수 있다.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산천초목 등. 경제적으로도 매우 유리하다. 주거비가 파격적으로 적게 들고 기타 경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면 반(半)자급자족도 가능하다. 내 경우 가장 큰 장점은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골살이에 대해서 많은 이가 건강이나 의료에 관한 걱정을 한다. 장수(長壽)의 세가지 요건은 운동과 음식, 조기검진이다. 따지고 보면 시골은 운동과 음식 등 섭생의 최적의 조건이고 조기검진은 마음의 문제이지 거리의 문제는 아니다.
아울러 보안과 연관된 불안감, 생활의 불편과 문화 향수의 기회 부족, 고독 외로움 소외감 등 심리적 어려움, 주민과의 화합 문제 등등은 막상 살아보니 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사전에 형편을 충분히 알아보면 된다.
나는 정년 10년전부터 은퇴준비를 했다. 은퇴 후 시골살이의 성공조건을 말하면 첫째 마음의 준비와 부부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 둘째 마땅히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 셋째 심신이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점, 넷째 사회적 교류는 적정수준인 게 좋다는 점, 다섯째 살면서 현지 주민과 맞는 검약한 생활이 필수적이라는 점, 여섯째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망을 마음에서 내려놓은 사람들은 은퇴 후 삶이 과거 현역 시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며 “억매이지도, 경쟁도, 의식도 않고 자유 그 자체의 삶"이라고 긍정한다. 이를 위해선 ‘내려 놓기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운동에 사전 준비운동이 필요하듯, 예열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의 조언을 종합해보면 우선 내려놓고 낮추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는 것이다.
예컨대 늘 남을 도와주고 챙겨주고 거기서 얻는 기쁨을 상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기적 욕구가 이타적 행위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관한 심리 요법 중에서 자신이 맛있는 것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뇌도 그렇게 생각해 식욕을 억제하듯, 스스로 솟구치는 욕망에 대해 이를 충족시키는 가상의 현실을 상상하라고 권한다. 욕심도 다이어트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욕망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점차 몸도 마음도 거기에 적응해 행동화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검소한 생활의 실천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실을 중시하는 삶을 실행하는 것이다. 되도록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음식점이나 식당도 서민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 작은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여유로운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다.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항상 차선책, 차차선책을 준비해 ‘안되면 그 다음 것을 하지’라는 여유로 살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감사함의 훈련이다.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자연히 불만보다는 만족을 느끼며 살게 되고, 그렇게 살다보면 만사가 긍정적으로 풀리며, 인생의 우여곡절이나 불운에서도 빨리 탈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을 써서 유명해진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스님 현각(玄覺)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 나를 찾는 행위와 즐겨 읽는 경(經)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문답식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순간경! 이 커피향을 마시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느끼는 순간, 순간, 순간…."
<계속>
여든번째 기억하기
은퇴 후 삶은 “억매이지도, 경쟁도, 의식도 않고 자유 그 자체의 삶"이며 이를 위해 ‘내려놓기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