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지나면서 두 가지 질문이 항상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일상의 삶은 늘 변화무쌍한 세파를 헤쳐 나가기에 급급했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삶의 본질적인 무게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누구나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접어들 무렵이면 대부분 자신의 전반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깝고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면 만족의 정도가 클 것이요, 반대일 경우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후반부 인생, 즉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불안해한다. 아무리 성공한 삶이라도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늙어갈수록 외로워지고 어차피 자기 혼자와 맞닥뜨리는 순간을 맞게 된다.
21세기 지금은 신자유주의경제가 지배하는 고령화시대다. 과거처럼 정년퇴직한 뒤 적당한 노후를 보내다 생을 마감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라 생각할 30대나 40대 어느 때라도 회사 문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 제2, 제3의 직업을 찾는 것은 이제 권유 정도가 아니라 강요당하는 현실이다.
과거 빈곤하던 시절 우리네 노인들의 삶은 지금보다 오히려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요즘 같은 연금제도나 사회복지혜택은 없었지만 대가족제도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굳건한 유교적 전통이 있었다. 그 질서 속에서 노인들은 자손들의 수발을 받으면서 비교적 안정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같은 핵가족·고령화시대에서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칫 잘못하면 배우자로부터 ‘황혼(黃昏)이혼’을 당할 수도 있고, 자식과의 교류도 끊어진 채 고독과 노환, 회한 속에서 지루하고 비참한 노년을 보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직면할 수 있는 이 불유쾌한 현실은 사실 딱히 누구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렵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는 일과 사람에 치기 쉽다. 그만큼 바쁜 것이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지인의 전화가 그렇게 귀찮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직을 떠나면 대부분 ‘적막강산’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익사회(Gesellschaft)의 현실이다. 장관을 지낸 이의 고백이다.
“장관직을 그만두니 그때부터 찾아오는 손님이나 전화가 딱 끊어지더군. 하루 종일 기다려도 전화 한통 없을 때도 있어. 나중에는 그토록 귀찮던 기자의 전화까지 그리워지더군"
전직 장관의 사정이 그러할 진대 하물며 일반인들은 오죽 하겠는가. 명퇴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사업 실패로 집에 머물 때, 만날 친지조차 없다면 매우 힘들 수 있다. 자칫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이 찾아올 수도 있다.
나는 다니던 신문사를 일찍 나오는 바람에 야박한 세상인심을 진작 혹독하게 겪었다. 현직을 떠난 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상대방이 나를 못본 척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아예 외면하거나, 내가 먼저 아는 척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매정하게 지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아예 대놓고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여튼 이런 경우들을 당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회사를 나왔다고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서운함과, 왜 지레짐작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냐고 스스로를 질타하는 마음, 내가 인생을 잘못 살은 탓 아니겠는가라는 자책감 등 마음 속 공방전이 나를 더욱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전화 통화도 다르지 않았다. 기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반갑게 전화를 받던 이들이 내가 전화를 하면 “네…"한 뒤 침묵하기 일쑤였다. 그 짧은 답변에는 어차피 나는 용건이 없고 당신이 용건이 있을테니 말해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금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고교 1년 선배의 행동이었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은 유복한 사업가였는데 우리는 술친구로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사표를 내고 나온 뒤 만난 술자리에서 평소와 달리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만한 일로 회사를 뛰쳐나와?…세파에 적응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결국 사회에서 잊혀진 인물이 될 거야…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신문사에 사정해 복직하는 게 최선의 수야!"
그는 내 인생의 독립선언에 대해 위로나 격려는 커녕 타인보다 더 혹독한 기준으로 공격했다.
평소의 온화한 모습은 간데없었다. 평소 그답지 않은 언행, 계속된 공격과 비판에 나는 입맛이 썼다. 2차 술집 가서도 나는 술만 계속 들이켰다.
집에 돌아갈 때 나는 평소대로 그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차가 강남역 4거리 앞에 왔을 때 그는 갑자기 내게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가 그날 보여준 언행은 충고가 아니라 더 이상 서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단절을 의미한 것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1월말 영하 10도의 추위가 엄습했다. 갑자기 속에서 불덩이같은 것이 치솟아올랐다.
‘참 더러운 세상 인심이구만.…’
앞으로 이런 더러운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새삼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한쪽으로는 감정이 격앙돼 호흡도 곤란할 정도인데 마음 다른 한편에선 아주 냉철한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너는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네가 기대하던 것이 이런 상황 아니었나? 어려운 상황을 직접 맞닥뜨려 보겠다는 것, 그 상황에서 느끼는 좌절과 분노 같은 감정을 억제하고 다스리겠다는 것. 그 과정을 거치면서 너를 사람답게 만들자는 것,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네가 진정 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고생을 사서 하려는 것이잖아? 도리어 너는 저 선배에게 감사해야 된다. 그가 인생의 냉혹함과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관계의 허실(虛實)을 웅변적으로 보여줘서 너를 깨닫게 만든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라. <계속>
예순일곱번째 기억하기
현직을 떠난 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상대방이 나를 못본 척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