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져온 미역국 사발면과 누룽지로 저녁을 대신했다. 속이 가뿐했다. 우리 현대인은 지금 물질적으로 넘쳐나 너무 먹어서 탈이다. 되도록 적게, 천천히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영양제를 드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쉬람 주변을 한시간 가량 산책했다. 밤 날씨가 우리 늦가을 마냥 소슬하니 써늘했다. 하늘은 잔뜩 흐린 지 달이나 별이 보이지 않았다.

내의를 입고 침대에 들어갔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깔고 일찍 잠에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깼다. 몹시 추웠다. 어제는 이런 추위를 느끼지 않았었다. 옆 침대 동료는 쿨쿨 자고 있었다. 나만 추운 것이다. 몸이 떨려왔다.
‘아. 몸에 감기 기운이 있구나. 며칠간 고된 여정 속에서 지친 몸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몸의 알아차림(awareness)이었다. 지금 몸이 피곤하고 상태가 안좋으니 잘 돌보고 쉬라는 시그널로 나는 해석했다. 새삼 정신신경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이 생각났다.
질병은, 돌이켜보면, 하늘에서 주는 선물일 수 있다.
인간이 자기 심신을 돌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데 대한 경고요 ‘이렇게 놔두면 안되니 돌봐라’는 신호다.
그런 측면에서 질병은 우리 생명을 보호하고 몸을 정상화하려는 자연스런 현상이요, 회복의 과정이다.
질병은 ‘자연이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는 이런 몸에 대한 민감성은 없었다. 몸이 불편해도 ‘괜히 몸이 꾀 부리는구나’ 생각하고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때는 젊었고 괜찮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난 60대, 이곳은 더구나 이역만리 타향이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누운 채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공기를 충분히 복부까지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금방 몸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소 침울해지고 산만해지는 생각을 호흡에만 집중했다. 이부자리명상이었다. 이어서 발끝부터 머리까지 마음의 눈으로 신체를 관찰하는 보디 스캔을 했다. 마지막으로 몸 전체를 쭉 늘려주는 기지개 겸 요가를 했다. 이 시간이 대략 한시간 정도.
춥게 느껴지던 감각이 따스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차갑던 손발에 온기도 돌아오고 복부는 따뜻했다. 반면 이마에 손을 대니 차가왔다. 몸이 건강하면 머리가 차갑고 복부가 따뜻하다. 아프면 반대가 된다. 머리에 열이 나고 배가 차가워진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로 설명한다.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라는 의미로 본래 음양오행설에서 나온 용어다. 우주에서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며, 태양의 따뜻함은 땅 속에 흡수돼 내려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어야 우주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가 있다.
이러한 이론을 인체에 적용하여 차가운 기운을 상체로 올리고 뜨거운 기운을 하체로 내리는 것을 치료의 기본으로 삼는다. 오장(五臟)의 측면에서 보자면 화(火)를 담당하는 심장과 수(水)를 담당하는 신장이 있는데, 하부의 수(水)는 화(火)의 도움으로 상부로 올라가고 상부의 화는 수의 도움으로 하부로 내려오는 순환을 하게 된다. 또한 '잠을 잘 때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말이나 반신욕(半身浴)도 수승화강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몸이 편안해지면서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새벽 5시 아침 명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의 몸 컨디션 상태를 살펴보니 몸은 내게 쉴 것을 요구했다.
아침 명상을 빠지자. 이것은 내가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라 몸이 내게 말하는 메시지를 겸허하게 받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쉬자. 비록 불원천리 명상 하려고 인도에 왔지만 지금은 내 몸의 말에 경청할 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