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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증 치유기

11비 오듯 땀 흘리며 심장은 빨리 뛰고

그러나 희망을 주는 의사를 만나 자신감을 얻다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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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불안감으로 다가오다

지리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혹독한 체험을 한 나는 헝클어진 심신을 억지로 추스르며 본격적으로 입사 준비를 했다. 이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쨌든 몰두할 일, 출근할 곳이 필요했다. 지인이 소개해준 곳은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공기업이었다. 서류를 준비해 임원직에 응모했다.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도 했다. 업무 성격상 내게 익숙하고 맞는 일이라 잘 설명할 수 있었다.

며칠 뒤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내심 매우 불안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경영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였다. 모든 게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회사 직원들이 나를 반대할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발전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던, 노조원들이 임원진의 출근을 저지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그러면 어쩌지? 밀고 들어가? 지금 나로선 도저히 못 해….’


갑자기 불안이 나를 지배하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당신 왜 그래? 무슨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아니고, 노조가 반대할 만큼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맞는 말이었다. 마음이 다소 놓였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또 다른 불안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혹시 누군가 악의적으로 지어낸 투서를 보낸다면….’

마치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장관 후보자나 된 것처럼 온갖 불안을 초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만들고 있었다. 우울증은 멀쩡한 사람도 제 발을 저리게 만든다. 일종의 불안장애 증상이었다.

절친한 후배가 권했다.
“형님, 정신과에 정식으로 한번 가보세요. 요즘 형님 모습이 예전과 달라요…."

 

“급성인데 완쾌됩니다. 오히려 정신력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나는 아는 의학 전문기자를 통해 임상경험이 풍부한 개인병원을 소개받았다. 내 증상과 과거 이야기를 들은 원장이 말했다.

“급성인 것 같은데 완쾌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약이나 치료 방법이 좋아져 만성 환자도 고치죠.
물론 본인 스스로 이겨내야겠다는 의지, 의사의 처방을 믿고 따라가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나는 희망과 신뢰를 동시에 느꼈다.

“어느 정도 치료받아야 하나요?"
“넉넉잡고 1년 정도? 환자마다 다르죠. 더 갈 수도, 단축될 수도…."
“완쾌하면 전처럼 정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나요?"
“그럼요. 오히려 정신력이 더 강해지기도 하는데요. 자신의 약점을 알면 더 조심하게 되고, 그래서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성공한 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어렸을 적에 병에 걸린 걸 계기로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많아요.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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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내게 하늘에서 내리는 복음같이 들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관건은 환자의 ‘의지’와 ‘자신감’입니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난 못해’라고 생각하면 못 하는 것이죠. 꼭 이겨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십시오."

그는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말해주고 꺼져가던 전의(戰意)를 되살려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환해졌다. 희망의 빛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치료에는 어떤 방법이 있죠?"

“약물 요법과 인지행동치료 두 가지가 병행될 겁니다. 몸살이나 식중독에 걸렸을 때 약을 먹어야 하듯, 우울증도 마찬가지죠. 의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를 배터리가 방전된 자동차에 비유했다. 방전된 차는 그냥 놔두거나 민다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외부에서 전원을 배터리로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주어야 한다. 우울증에 약물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인지행동치료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환자가 스스로 잘못된 심신 상태를 교정하고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또다시 방전이 안 되도록 운전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차가 시동이 걸리고, 이후 운행을 통해 배터리가 충전되면 외부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잘 굴러가게 됩니다. 그것이 1차 치료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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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처방전(하루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항우울제: 렉사프로 10밀리그램
수면제: 스틸녹스 10밀리그램
항불안제: 렉토팜 1.5밀리그램 × 2회, 인데놀 10밀리그램 × 2회

내가 처방받은 약은 세 가지였다. 내가 지난번 동네병원에서도 세로토닌 치료를 받았는데 사흘 먹고 그만두었다고 하자, 원장은 정색했다.

“이 약은 소화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뇌 속에는 평온한 마음을 가져다주는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우울증에 걸리면 이 호르몬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때문에 뇌 안에서 세로토닌의 배출을 강화하고 인체 내 흡수를 억제하는 항우울제를 처방해서 마음의 평화, 잔잔한 기쁨을 찾게 해드리는 게 치료의 포인트입니다. 햇볕이 날 때 기분이 좋죠? 그럴 때 세로토닌의 배출이 잘 됩니다. 뇌 속에 세로토닌양이 증가하면 마음이 즐거워질 것입니다. 꼭 제가 드린 처방전에 따라 약을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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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마음가짐의 중요성

그러면서 그는 인지행동치료의 일환으로서 긍정적인 정신 상태와 마음가짐의 훈련을 강조했다.
“지금 늘 마음이 괴로울 텐데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세요. 혹시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단호히 차단하십시오. 선생님의 인생 경력을 보면 어려운 여건을 잘 참아오셨고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좋게 생각하십시오."

진료 시간은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혹시 이 약을 드시는 동안 심리적으로 굉장히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행복감과 자신감이 넘치고 병이 다 극복됐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조심하십시오. 그러다 다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종의 조울증 증상인데 당분간 어떤 큰 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가령 이사를 해야겠다든가 직장을 옮기겠다든가 등등 말입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 순간 원장은 또 한 가지 덧붙였다.

“아. 술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당분간 안 드셨으면 합니다. 드시더라도 조금만 드세요. 마시고 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수납 창구에서 진료비 계산을 하는데 나는 의료보험 대신 그보다 몇 배 비싼 일반 의료수가로 돈을 지불했다. 의료보험으로 하면 진료기록이 남아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하는 괜한 걱정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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