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힐링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로마 3대 노포(老鋪)의 주방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편집 서동욱 기자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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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째 이어가는 로마의 노포 ‘라 타베르나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 내부.

 

‘Rome in Ruins(폐허 속의 로마).’

로마에 도착하는 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역사적 유물·유적이란 의미의 ‘Ruins’이 아니다. 실제 더럽게 변해가는 쓰레기 도시라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불결한 오물 도시 로마’라고나 할까? 지저분한 현장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로마 종말’이나 ‘난민 차별’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마를 사랑한다’는 것이 기사의 진짜 핵심이다. ‘쓰레기를 포함한 인류의 모든 숨소리를 보듬은 곳이기에 한층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기사 행간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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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알리’의 단골 손님들. 할리우드의 이탈리아계 배우들이 많다.

 

3대에 걸쳐 가족이 주방을 이어오는 곳  

노포(老鋪)는 로마의 맛과 멋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 수십 년 수백 년 한 우물만 판 식당에서 먹는 로마와 로마인의 정취다. 필자가 생각하는 노포의 조건은 두 가지. 첫째 최소한 3대에 걸친 로컬 푸드, 둘째 가족들이 총동원된 패밀리 비즈니스. 주방의 주인공 역시 가족 중 한 명이어야 한다

이런 저런 정보를 근거로 알아본 결과, 로마에는 필자가 생각하는 노포 레스토랑 리스트가 9개로 압축됐다. 로마 외곽에 주로 있지만, 고맙게도 로마 시내에도 4곳이 들어서 있다. 필자가 머문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라 타베르나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La Taverna dei Fori Imperiali·이하 임페리알리)’라는 노포였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멋지게 나이 든 60대 요리사의 사진과 함께 ‘100년 패밀리 레스토랑’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늦은 점심시간인 터라 이미 절반 정도 테이블이 빈 상태로, 자리를 뜨려는 손님도 더러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자 노포만의 특별함이 와 닿는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장년 손님이 많다는 점이 일단 특징이다. 편안하고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인이 보면 참기 어려운 장면이겠지만, 주문 하나 받더라도 서로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진행해 나간다. 미리 주문할 것을 결정할 상태라도 그날의 요리에 관한 얘기를 전부 들어주는 것이 노포에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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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알리의 카르보나라(왼쪽 위)와 가지를 곁들인 소고기요리(왼쪽 아래). 오른쪽은 임페리알리 입구. 

 

40유로의 호사

이런저런 궁리 끝에 로마 음식의 대명사인 카르보나라(Carbonara)를 시켰다주문한 지 20분쯤 지나 카르보나라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파스타 색깔이 전체적으로 초록색이라는 사실이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완두콩의 사촌 격인 비그나로라(Vignarola)가 밴, 채식주의자가 즐거워할 파스타다. 한입 베어 물자 너무 맛이 순해서 놀랐다. 미국인의 입맛을 충족시켜줄, 후추와 돼지고기로 범벅이 된 강한 맛이 아니다. 간간이 밴 치즈가 소금 역할을 하면서 입맛을 돋운다. 해물을 빼고, 바다의 맛만 살린 우동 격이라고나 할까. 강하지 않은 맛에 맞춰 와인도 메를로가 아닌 토스카나산 약한 걸로 시켰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 요리 역시 필자의 주문 탓인지 고기가 아닌 가지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고기는 조연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둘 다 불에 잠깐 그을렸다가 올리브오일로 처리한 뒤 허브로 맛을 돋웠다. 지중해에서 수천 년간 지속된 가장 간단한 요리법이다. 로마의 육류 요리는 피렌체 스타일의 두꺼운 고기가 아니다. 한입에 즐길 수 있도록 얇게 썬다. 야채를 먼저 먹은 뒤 고기를 즐겼다. 특유의 섬유질 맛과 함께 가지가 혀끝에서 녹는다. 연한 고기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옅은 허브 향으로 후각을 자극한다. 혀가 아니라 코로 먹는 고기 요리다. 하나로 뒤섞인 게 아니라 재료 각각의 개성을 살린 ‘따로국밥’ 요리다.

무례하게도 “100년 노포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웨이터에게 전했다. 일어서서 직접 찾아가려는 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 다가왔다. 60대 셰프의 아들과 딸이다. 2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두 자식이 레스토랑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속의 셰프는 이미 저 세상 사람으로 사라진 상태다. 주방은 어머니가, 테이블은 두 자식이 책임지는 식이다. “어릴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시작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노포의 어제와 오늘 나아가 내일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임페리알리에서의 대낮 식사는 2시간 만에 끝났다. 마지막 손님이기에 식후 알코올인 레몬 첼로와 디저트도 서비스로 제공됐다. 세상을 뜬 셰프의 부인이자 두 자식의 어머니도 주방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취침 전 군대 점호처럼, 레스토랑 구석구석을 조용히 관찰한다. 식사비는 전부 합쳐 40유로 정도다. 서울에서 와인 한 병 값도 안 되는 비용이다. 흐뭇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쓰레기와 거지로 뒤덮인 도시라고 하지만, 로마와 로마인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기사 출처 : 주간조선 2019 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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