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치유기

1524시간 ‘긍정’ 관리체계 가동하다

좋은 글 외우고 ‘오늘 좋은 일’ 떠올리고...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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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한 만큼 행복해지는 것이 사람

어차피 우울증과의 장기전에 돌입한 이상 ‘24시간 특별관리 체제’를 가동했다. 하루 24시간 중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수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즉 의식이 깨어 있는 시간은 늘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오전에 운동, 오후에도 틈만 나면 단전호흡, 스트레칭을 하며 육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정신에 힘을 주는 책의 좋은 말이나 구절, 시 등을 수첩에 적어놓고 울적하면 꺼내 보거나, 큰 소리로 낭송했다. 길을 걸을 때면 반복해서 외우며 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구절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서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은 바깥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

_넬슨 만델라,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 무엇도 염려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절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사람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_<빌립보서 4:6~7>, 《성경》 중에서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은 꽃 사 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 

_이시카와 다쿠보쿠, 시 <나를 사랑하는 노래> 중에서


행복한 생각하며 잠들기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에는 기체조와 단전호흡 운동을 했다. 우선 경직된 근육을 풀고 몸의 기가 원활히 순환되도록 기체조를 한 다음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단전호흡을 한다. 약식으로 하면 보통 30~40분 정도 걸리는데 몸과 정신이 아주 개운해진다.

단전호흡을 마친 후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배변을 했다. 원래 배변은 매일 아침에 했으나 우울증 치료 기간 중에는 당분간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 하기로 했다. 배변하고 나면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후련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끝나면 샤워로 몸을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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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에 마지막 시간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특히 중요하다. 하루의 마지막이 기분 좋으면 하루 전체에 대한 기억이 좋게 되며,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침대에 누워서 우선 《긍정의 힘》을 꺼내 5분간 읽었다. 이후 눈을 감고 누워서 오늘 하루 지내면서 가졌던 기분 좋은 기억이나 생각을 떠올렸다.


‘오늘 일어났던 기분 좋은 일이나 경험 다섯 가지는 뭐지?’

별생각이 나지 않으면 과거에 즐거웠던 추억이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 소풍, 아내와의 데이트, 아이들이 어렸을 적 전 가족이 미국에서 함께한 자동차 여행, 기자 시절 자랑스럽거나 신났던 추억 등을 떠올리면 마음의 행복감이 찾아오곤 했다.

또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좋은 일을 상상하기도 했다. 내가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친지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습, 장안의 화제를 몰고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그 작품이 영화화돼 미국 할리우드에서 상영되는 모습, 내가 몸담았던 언론계와 문화계를 이끄는 모습 등은 상상만이라도 신났다.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우울증 극복을 위해선 무엇보다 현실과 나 자신을 긍정하는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나름대로 인생을 긍정하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해왔지만, 그동안 나에게는 부정적 요소가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내 결점들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부정적 요소들이 쌓여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게 된 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면서 말이다. 그런 것들이 쌓여 우울증으로 발전한 것이리라.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발간되는 〈뉴 리퍼블릭〉 편집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진보의 역설》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다.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다. 텔레비전, 에어컨, 냉장고,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스마트폰 등 온갖 문명의 이기, 풍부한 먹거리, 쾌적한 시설, 복지제도 등등….

19세기 미국 노동자는 일주일에 평균 66시간을 일했다. 당시 인류를 괴롭혔던 소아마비와 천연두 같은 질병들은 지금 거의 퇴치됐으며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연장됐다.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도 많이 사라졌다. 삶의 외형을 보면 현대인들은 행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50년 전보다 10배나 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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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질문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 한국인에게 물어야 한다. 불과 반세기 동안 지구상 최빈곤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했고, 단군 이래 가장 융성한 시대에 살면서 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최하위권(OECD 34개국 중 33위)이요, 자살률, 이혼율은 왜 그리 높아졌는가. 반면 국민소득이 형편없이 낮은 방글라데시나 코스타리카, 부탄, 바누아투 같은 나라가 왜 행복지수 세계 1, 2위를 다투곤 하는가.

해답은 바로 우리 마음에 있다. 한국인의 92퍼센트가 ‘돈과 행복은 관계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물질적 부에 대한 열망이 높다(조선일보.한국갤럽의 행복여론조사, 2011). 이는 조사 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며, 덴마크(50퍼센트)보다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았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와 물질에 대한 집착이 크고 경쟁심까지 높다보니 세계에서 행복도가 매우 낮은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행복이란 긍정적 에너지를 손에 넣는 것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호주인 닉 부이치치. 세계적인 강연자이자, 작가인 그는 어린 시절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절망 속에 살았으나 결국 장애를 극복했다.

현재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이란 재단을 세우고 전 세계 40개국 이상을 돌아다니며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몇 해 전 결혼해 아름다운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 그가 한국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해 역설하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행복이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갖고 사는 것이다. 여러분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집중하라. 행복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찾는 것이다."

아무리 잘 살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큰 성취를 이루어도 내면이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반면 누가 봐도 힘든 상황에 살고 있지만 밝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해당하는가?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많은 과학적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과 도널드 캠벨은 1971년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면 벌수록, 기대와 희망은 함께 올라가는데, 이 때문에 지속해서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이를 구체적 사례 조사로 증명했다. 그는 복권 당첨처럼 기분 좋은 일을 겪은 사람들과 교통사고처럼 좋지 못한 일을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했다. 물론 좋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더 행복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당첨 후 평균 두 달이 지난 후에, 행복도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돈이 많은 것이 이미 더 즐거울 것이 없는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반면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의 경우 사고 직후에는 매우 불행했지만 몇 달 뒤에는 과거의 행복 수준을 되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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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마음에 달렸다는 사실이 의학계에서는 ‘플라세보 효과’로 설명된다. 의사가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복용시켰는데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가짜 약을 먹였더니 실제 낫는 사람이 생겼고, 알코올 성분이 없는 음료수를 술이라고 속여 마시게 했더니 정말 취한 사람이 나타났다.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수술하지 않고도 수술한 것처럼 믿게 했더니 실제로 치료 효과가 나타난 임상 보고도 있다.

이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마음이 인체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대뇌생리학적으로는 그런 믿음이 대뇌 신경체계에 전달돼 일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긍정의 힘이 주는 효과도 대단하다. 긍정적인 사람이 더 건강하고, 장수하며, 긍정적인 생각이 병을 빨리 낫게 해준다는 연구결과 보고서는 무수히 많다. 마음(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행복의 정복》을 쓴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집, 건강, 사랑, 성취, 존경과 같은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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