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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연재| 2006 한국인 vs 일본인(8)

튀는 한국인 vs 원만한 일본인

21세기에 더 맞는 인간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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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토론이 오가는 한국 대기업의 비즈니스 미팅/ 주간조선

 

결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부장이 김과장을 불렀다.
“오전 11시 5층 중회의실에서 홍보 전략회의가 있는데 당신도 참석하지."
“무슨 회의인데요?"
“식음료 쪽에서 다이어트 음료를 새로 개발했는데 광고 컨셉을 협의하자는 거야. 요즘 다이어트 제품이란 게 내용은 다 그렇고 그런데 이미지 때문에 뜨거나 죽는 거 아닌가?"
“알겠습니다."

오전 11시 회의는 전무 주재 하에 전략·재무·영업·홍보·무역·신제품 개발 관련 부서장 등 1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김과장처럼 과장급이 배석한 부서도 세 군데나 됐다. 다나카 고문도 옵저버로 참석했다. 제품 개발팀의 상품 내용 소개 및 판촉 전략 설명이 진행됐다. 이어 홍보팀이 제품 모델로 요즘 잘나가는 팔등신 미녀 탤런트 K양을 추천했다. ‘역시 다이어트 제품 광고에는 야리야리하고 늘씬한 미인이 제격’이라는 홍보팀장의 농담 섞인 멘트가 이어졌다.
이때 김과장이 발언을 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광고에는 8등신 미녀보다 도리어 수더분해 보이고 좀 뚱뚱한 연예인을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김과장을 쳐다봤다. 김과장보다 5년 선배인 부장급 홍보팀장의 얼굴에는 ‘이 친구 봐라’라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김과장이 말을 계속 했다.
“왜냐하면 너무 천편일률적입니다. 다이어트 광고 때마다 미녀 모델이 등장합니다. 이제 소비자는 ‘또 나왔어’라며 식상해 합니다. 단순한 눈요기감은 될 지 모르지만 구매 의욕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할 겁니다. 반면 뚱뚱한 모델이 등장하면 소비자들은 우선  ‘저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다이어트=미녀’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있으니까요."
홍보팀장이 중간에 말을 자르고 나섰다.
“그럼 다이어트=뚱녀 이미지를 심자는 겁니까?"
김과장이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아닙니다. 수더분한 이미지의 모델을 밀착관리하면서 그때부터 강도 높은 운동?식이요법을 통해 실제 다이어트를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1개월, 2개월 지나면서 달라져가는 모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아. 그거 여성 미용 교실 등에서 자주 쓰던 수법이던데."
영업담당 부장이 말했다.
“그 쪽에서 쓴 모델은 지금은 뚱뚱해진 왕년의 스타였죠. 그러나 우리는 스타가 아니라 하여간 지금 뚱뚱한, 그러나 세간에는 꽤 알려진 평범한 사람을 쓰자는 겁니다. 그래서 그 평범한 체격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거죠. 그리고 식음료 다이어트 TV광고에서 뚱뚱한 이를 모델로 쓴 광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네들을 모델로 안쓰겠어요? 안 팔리니까 안쓰는 거지."
홍보팀장이 다시 비틀고 나왔다. 김과장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비싼 돈 주고 인기 모델 불러 남들 다 하는 그런 방식으로 홍보하겠다면 회의할 필요가 뭐 있나요? 그까짓 것 남들 하는 대로 대충…" 
“이봐요. 김과장.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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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이날 회의는 갑론을박하는 바람에 결론을 짓지 못하고 끝났다. 부서로 돌아오는 길에 부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아. 우리 부서 일도 아닌데 뭐 그리 열심으로 나서나? 그 쪽이 이미 결정해 놓은 컨셉이 있는데. 그저 중간만 하면서 따라가지…"
“그럴 바에는 저보고 왜 회의 참석하라고 하셨습니까?"
김과장의 볼멘 소리에 부장은 대꾸를 피한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날 점심은 구내 식당에서 김과장과 다나카 고문, 그리고 마침 회사에 들린 요시다 사장 등 세 사람 간에 이뤄졌다. 다나카 고문이 방금 전 열띤 회의 내용을 요시다에게 전하면서 “김과장은 열혈한"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미소를 짓던 요시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인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지면 안된다. 1등 되라’는 식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면서요?"
김과장은 요시다가 무슨 의도로 묻는 지를 뻔히 알지만 “네"라고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늘 “대통령 돼라. 대장 돼라"고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요시다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폐 끼치지 말라’, ‘사이 좋게 지내라’, ‘참아라’는 가정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그래서 나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은 나쁘다고 여깁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에 맞추면서,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죽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합심해서 팀플레이를 잘 하는 편입니다."
“…"
몇 숫가락을 부지런히 들던 요시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어른이 되어도 지는 걸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편입니다. 한국인들의 열띤 토론 광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기보다 어떡하면 자신의 말로 상대방을 넉 아웃 시킬 수 있는가를 궁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은 팀 플레이어가 아니라 전원 솔로이스트예요. 자기 만이 이 세상에서 첫째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시다의 다소 직설적인 표현에 김과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 오전 회의의 열기에서도 벗어나지 않은 상태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다나카가 끼어 들었다.
“일본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이런 게 있어요.
‘저녁 놀이 진다. 해가 진다.
산 속의 절에서 종이 울린다.
손에 손 맞잡고 우리 모두 돌아가자.
까마귀도 함께 돌아가자꾸나.’
나이 지긋한 한국 분이 이 동요를 가리키면서 ‘일본에선 까마귀까지 손 잡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그게 잘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보기에 일본은 지나치게 협조 지향적이고 매사 ‘모나지 말자’ 주의인 반면, 한국은 자기 주장 훈련을 받고 ‘협조만으로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김과장이 입을 열었다.
“원만하게 살아라는 교육은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정교육 테마인지, 인간사에 제일 중요한 덕목인 지는 의문이 듭니다. 너무 방어적이지 않습니까? 10여년전 서울 명문대 어느 총장께서 명심보감이란 책과 함께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것을 자신의 교육모토로 내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죠. 그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보편적 미덕 중 하나지, 한국의 명문대가 21세기 앞두고 지향할 가치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인의 튀는 성향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처럼 지나치게 원만함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붕어빵 만드는 식의 교육을 받다 보니 일본인의 행동도, 성격도 그저 비슷비슷하고 특별한 게 전혀 없는 것 아닐까요. 한마디로 개성이 없죠. 지금은 통통 튀는 개성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닙니까?"
퇴근 길 전철 간에서 김과장은 한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때 요시다와 나눈 대화를 전해 주었다. 잠시 뜸을 들인 한기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세계는 일본인들의 그런 얌전한 ‘범생’ 스타일 가지고는 안돼. 일본인들의 평균주의? 하하, 문제 많지. ‘모두 함께 사이좋게’라고? 지금 얼마나 튀는 세상인데. 한국이 요즘 휴대폰을 비롯 각종 첨단제품에서 디자인, 성능, 다기능 등 모든 면에서 일제를 추월하는 힘의 원동력이 바로 튀는 힘 덕분이야. 아이디어 회의를 해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침 튀겨가며 열 올리고 하는 게 서울식이야. 그렇게 해도 뭐가 제대로 안 나오는 판국에 일본처럼 남 눈치나 보고, 자기 주장 안내세우고 조용 조용…뭐가 나올 것 같아?"
“맞아요. 정말 그래요."
김과장은 맞장구를 치면서 오늘 오전 살벌했던 회의 내용을 설명했다. 한기자가 다시 말했다.
“구로다 특파원도 일본식 평등주의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지 이렇게 말하더군. 생존 경쟁에서 한국은 일본과 비교가 안될 만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사회라고. 거듭된 외세의 침략이나 이민족 지배 등 쓰라린 역사적 체험들이 그런 한국인의 개성을 이룩해놓은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런데 요즘 일본도 달라지고 있어. 예전 얌전했던 이미지를 버리고 튀는 쪽으로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김과장이 물었다.
“요즘 고이즈미를 비롯 일본 정치인들 행보를 봐.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칠고,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지. 고이즈미의 튀는 언행은 어떤가? 미국 가서 부시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팝송을 부르지 않나 총리실 출입기자 들 앞에서 홀아비 섹스문제를 거론하지 않나, 이런 모습은 과거 ‘범생’ 정치인들이 생각도 못한 파격이지. 우리 국내 정치인들이 정말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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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엘비스 프레슬리 저택을 방문했던 일본 고이즈미 총리(맨 왼쪽)와 부시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 KBS)
 
“정말 그러내요. 언제 소주 한잔 하면서 얘기를 들어야겠어요."
“그래."
“아 참. 내가 훌륭한 어른 한 분 소개 할게. 연세는 60대 중반인데 미국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고 오랫동안 그 쪽 대학서 교수 생활을 했으며 일본에도 교환 교수 등으로 여러 해 지내신 것으로 알아. 미국과 일본에 모두 정통한 분이지."
김과장은 관심이 쏠렸다.
“지금은 무얼 하시나요?"
“서울의 미국 컨설팅 회사의 상담역으로 와 계셔. 나는 10년 전 미국서 취재할 때부터 알게 돼 지금껏 박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지하철이 어느덧 김과장 동네 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과장이 말했다.
“그래요. 빠른 시일 내 뵙죠. 자, 전화 끊어야 할 타임이네요."
“오케이. 김과장. 그리고 오늘 오전 회의 너무 괘념하지 말아. 강한 자기 소신과 의사 관철의 힘, 그것이 자네의 장점이야. 물론 부정적 측면도 있지. 허지만 내가 경영진이라면 공손하게 남 따라가는 의견이나 내는 사람보다는 열혈한 김과장을 더 밀 것 같아."
“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요."
“뉴욕타임즈가 극찬한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란 책을 얼마 전에 읽었는데 김과장에게 맞는 구절이 있더군."
한기자가 지적한 책의 내용은 이랬다.
“창조적 계급의 구성원들은 개체성과 자기 표현을 강하게 선호한다. 그들은 조직이나 제도의 지시에 순응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전통적인 집단 지향의 규범에 반항한다. 이것은 항상 ‘변덕스러운’ 예술가에서 ‘튀는’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양상은 이제 훨씬 더 만연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직규범에 대한 비순응의 증가는 새로운 주류의 가치관을 나타낼 것이다. 창조적 계급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창조성을 반영하는 개인주의적 독자성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복합적인 창조적 독자성이 혼합된 것일 수도 있다."<계속> 
※ 이 연재는 2006년을 기준으로 당시 상황과 인물을 바탕으로 일부 픽션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만든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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