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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영 한의사 칼럼

화병 환자가 반복 생각하는 3가지

화 풀리게 하는 '주의분산' 방법들

권찬영 한의사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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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화병 클리닉 진료실에 내원한 30대 남성 K씨.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요새 잠을 통 잘 수 없어서 내원했다. 차분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숨이 점차 가빠지면서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도 커졌다.

K씨의 이야기는 이렇다. 얼마 전 직장 동료 간에 오해로 인한 다툼이 있었는데, 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동료들 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해가 그의 상사인 A씨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 그 상사가 정말로 그런 오해를 만들었는지,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꾸만 상사 A씨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K씨는 직장에서 일도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신경이 곤두선 느낌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지다 보니, 별 일 아닌 것으로 집에서 아내에게 화를 냈고, 부부싸움을 한 이후에야,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클리닉에 내원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있었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신체 증상으로는 머리와 목으로 열이 치받는 것 같고, 어깨도 딱딱하게 굳으면서 뒷머리가 뻐근했으며, 밤에는 잠이 잘 안 올 뿐 아니라, 잠을 자더라도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가슴도 답답하고, 뭔가 그득하게 차있는 것 같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한숨이 늘었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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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전형적인 급성 화병이었다. 분노로 인한 신체 증상도 치료를 해주어야 했지만, 분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사건을 곱씹으며 화를 더해가고 있는 그의 모습에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했다.

K씨처럼 분노를 유발한 특정 사건을 지속적으로 생각하며, 이를 의도하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아도 이 과정이 되풀이되는 상태를 ‘분노 반추(angry rumination)’라고 한다. 

이런 분노 반추는 평소 작은 분노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노와 관련된 생각을 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서 잘 발생할 수 있다. 분노반추는 그 반추의 대상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분노 사건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는가?

(2) 분노의 대상에게 복수하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가?

(3) 분노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는가?

 

특히 분노 사건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거나, 복수를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노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경우,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법(distraction)이 반추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K씨에게는 분노반추로 인해 K씨의 삶이 점차 고통스러워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 후, 화가 나는 사건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바깥에 나가서 10-15분 정도 걷기를 처방했다. 

그리고 단순히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주위 풍경이나 소리, 하늘의 모습, 냄새, 바람 등을 구체적으로 관찰한 뒤에 적어올 것을 숙제로 내었다. (물론 이런 주의분산 방법은 분노 반추 뿐 아니라, 우울 반추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내원한 K씨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한 두 번은 화가 나는 생각에 휩싸였을 때 바깥에 나가서 걷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걷기를 했고, 숙제도 꼼꼼히 잘 적어왔다. 한결 진정된 K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K씨를 화나게 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K씨의 추측이 만들어낸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인지? 동료들과의 오해로 감정이 상했던 것처럼, 상사에 대한 감정이 오해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던 K씨는 A씨가 의도적으로 K씨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모함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이 분노에 빠졌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A씨가 그런 의도를 가질 만한 개연성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럴 개연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A씨의 표정이 한결 더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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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다. 우리는 살다보면 다양한 분노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때론 K씨처럼 분노 반추에 빠지기도 한다. 분노 반추는 분노를 곱씹으며 화를 증폭시키고, 신체적으로도 과각성된 상태가 유지시키면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이때, K씨에게 처방한 걷기와 같은 주의분산 방법은 이러한 반추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다. 꼭 걷기 뿐 아니라,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몸을 흥겹게 움직이는 것도 좋은 주의분산 방법이 될 수 있다. 반추에서 벗어나 감정이 진정되었을 때, 자신의 분노가 정당한 것이었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우리의 생각으로 인해 분노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K씨처럼 말이다.


이번 칼럼에서 우리는 급성 화병 K씨의 사례를 통해 분노 반추라는 것을 살펴보고, 주의분산이 하나의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앞으로 몇 편의 칼럼을 통해, 분노 반추의 특성에 대해 더 살펴보고, 이 분노 반추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글ㅣ 권찬영
권찬영 한의사(한의학 박사, 한방신경정신과전문의)는 부산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조교수로 학생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부속 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화병&스트레스 클리닉에서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명상학회 T급 명상지도전문가입니다. 노인의학, 통합의학, 심신요법, 비약물요법 등에 관심이 많고, 근거기반의학과 환자의 의료선택권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며, 교육과 진료 후 남는 대부분의 시간은 논문을 읽고 쓰거나 블로그를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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