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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연재 | 최찬희의 산중일기

주인 할아버지와 삼랑진 장 보러 간 날

고로쇠 물 얻어먹고 차 태워드리고

최찬희 작가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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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랑진 시장/ 밀양시 공식블로그 캡처

 

 주인집 할아버지가 고로쇠 물을 한 병 갖고 오셨다. 여기 내려온 첫날에 자랑스럽게 고로쇠 물통을 보여주시면서 저게 한 통에 얼마라던 기억이 나서 얼만지 여쭈었더니 할아버지는 성의를 무시당한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냥 먹으라고 하신다. 


순간, 도시의 때를 그대로 묻히고 산 내가 느껴졌다. 그래도 파는 건데 어떻게 그냥 먹냐고 했더니 못 들은 척, 이게 마지막이라며 한 말들이 물통을 오토바이에 싣는다. 그리고 서울에 부치려고 우체국에 다녀오신다는 말씀만 남겨놓고 나가셨다. 


30년 전, 죽을병이 걸려 이 배내골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말을 처음 나를 만나는 날부터 매일 계속, 마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신 것처럼 틈만 나면 똑같이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연세가 팔십이다. 


그런데 그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바른 걸음걸이로 산밭을 가꾸고 산나물이며 열매를 따고, 고로쇠 물을 받으러 다니신다. 오지를 개발한다고 집 앞으로 길을 닦아놓는 바람에 이런 집을 짓게 되었다며 내가 세 든 집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신다. 

생각해보면, 한 달에 30만 원씩 세를 받으니 이런 오지에서는 만만치 않은 수입이다.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잘 지은 집은 세를 놓고 당신은 바로 뒷터에 허름한 조립식 집을 지어 생활하신다. 


새벽 5시면 뒷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면 또한 어김없이 ‘에이!’ 하는 소리도 들린다. 할아버지가 짜증을 내시는 건지 아니면 밖으로 나왔다는 어떤 신호인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이면 고양이가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로 울어댄다. 저런 소리로 당신을 부르는데 누군들 편히 누워있을 수 있으랴. 멸치 몇 마리로 상황을 종료시킨 할아버지가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이면 또 일정한 시간에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할아버지 쪽에서 오히려 양오! 양오! 하고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다. 할아버지는 또다시 멸치를 몇 마리 주는 것으로 그 의식을 치르는 과정이 방문이 달린 벽 사이에 누워서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면 이내 조용해지는 그 고양이를 아직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것이 몸집이 작고 얼굴은 귀엽다 못해 앙증맞기 그지없고 눈망울이 커다란 고양이를 그려본다. 아니면, 심술 맞은 얼굴로 몸은 집채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옆으로 지나갈 때면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지면서 순간, 정신을 잠깐 잃은 것처럼 아찔해진다. 평생 씻지 않은 커다란 개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코가 아닌 뇌를 찌르는 것 같아서다. 


과연 할아버지의 옷은 티베트의 설산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입고 있던 때에 찌든 색깔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점심때 내게 말을 붙이신다. 내일이 삼랑진 장날인데 거기 갈 일 없냐고 물으시는 폼이 차를 좀 태워 줬으면 하는 의도 같았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방에 있는 티브이가 고장 나서 삼랑진 시장에 있는 전파상에 맡겨야 했다. 혼자 사시면서 친구 같은 티브이가 고장 났으니 난감하셨을 듯하다. 시골 장날도 궁금했던 차에 대답은 그런다고 해놓았지만, 문제는 밀폐된 공간인 차 안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가는 동안 내 숨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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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랑진 시장/ 밀양시 공식블로그 캡처

 

다음 날, 새 옷으로 갈아입으신 할아버지가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셨다. 삼랑진 오일장에는 근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오니 늦게 가면 좋은 묘목이며 모종이 없어진다며 애를 끓이시는 통에 아침 댓바람에 산을 내려갔다. 차창을 모두 열어놓고 2단 기어로 천천히 산길을 내려가자 마침 봄바람이 부드럽게 들어와 다행이고, 다행이었다. 노란 산수유로 물들었던 산에는 어느새 진달래가 피어 분홍빛 물감이 번지고 있다. 


 “오데~ 벌써 진달래가 많이 핀네!"


 눈만 뜨면 고로쇠 물 받으러 산에 올라가시는 할아버지께서 늘 보던 진달래가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감성의 문이 열리신 걸게다. 


 “오데, 세상이 살다 보니 좀 변하긴 변합디다! 그전 같으면 지금 물이 한창 나와야 할 낀데, 고마 마 물이 딱 끊어져삐네! 참, 이상타!"


 “할아버지, 올해는 윤달이 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서울서 온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산골 일을 무당 점치듯 할아버지께 둘러댔다. 


 “아, 그런 게 있어예! 그라몬 그긴 뭔데예?"

 

“예? 뭐가요? 윤달 모르세요? 아, 그러니까 아마도 올 이월이 윤달이 끼면 음력으로 이월이 또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그래 예? 그기 와 그리되는 긴데예?"


 “뭐가요? 아, 그러니까 음, 올해는 달력보다 절기가 한 달 먼저 오는 거로 보면 되는 거겠죠?"


 “참, 이상타! 그기 와 그리되는 긴데예?" 


 나는 속으로 설마, 할아버지가 정말로 윤달을 모르시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마치 선문답을 늘어놓듯 되풀이되던 이야기가 어느새 슬쩍 아랫마을로 돌아갔다. 비탈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이 마을, 저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을 새끼줄에 줄줄 엮듯 늘어놓으신다. 


 “저 안산장 장 할머니 손녀딸을 내가 말해서 우리 조카한테 줬다 아인교! 우리 조카가 내 이불이랑 갖고 내한테 왔다가 고마 맘이 맞았는지 잘 돼서 남매 낳고 잘살고 있다 아이요!"


할아버지는 장한 일을 하신 듯, 뿌듯한 목소리로 끝이 없는 이야기를 뒷좌석에서 내가 듣거나 말거나 이어나가신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이 겹겹으로 지나가는 비탈진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어젯밤 읽었던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처럼 언젠가는 지금 이 시간이 소설처럼 내 기억에서 되살아날 것이라 예감했다. 


삼랑진역을 지나는 기찻길 아래로 난 굴다리를 지나자 초입부터 장이 늘어서 있다. 봄철에 열리는 시골 장답게 각종 유실수와 채소 모종이 넓은 싸전마당을 좁게 만들며 늘어졌고 울긋불긋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흥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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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마치 고기를 건져 올리려는 낚시꾼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구부러진 허리를 편다. 집 주변에 널린 것이 맨 노는 땅이라고 차 안에서 내내 중얼거리더니 그 넓은 산허리를 다 메꾸기라도 하시려는 듯한 눈빛이다. 대추나무며 엄나무며 가시오가피나무를 흥정하더니 돈이 모자란다며 다 물리고 한 주에 칠천 원 하는 대추나무만 열주에 육만오천 원에 깎아 사셨다. 


그리곤 모종도 양배추며 고추, 가지 등속을 흥정하더니 하나도 안사고, 그 옆에서 도라지와 대파 씨앗만 한 줌씩 사셨다. 그리곤 더덕 뿌리 한 봉지를 사셨다. 아마도 더덕 뿌리는 비스듬해서 물이 잘 빠지는 산등성이에 파묻고 도라지와 대파는 집 뒷마당에 뿌리실 모양이다. 난 올여름이면 길게 올라와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별처럼 흔들릴 보라색과 흰색 도라지꽃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산에서 캐왔다 해서 산도라지를 한 봉지에 만 원을 주고 샀는데 속았다는 생각이 좀 있다 들었다. 지금이 산도라지 나올 철이 아니란 말이다. 다시 물리려고 가보니 도라지를 판 할아버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 말도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던 할머니가 찐 고구마를 할아버지 입에 넣어드리고 있었다. 장 끝자락에 옹그리고 앉아 있는 두 분의 모습에 갑자기 뭔가 뭉클 올라오는 게 있어서 나는 급히 그 자리를 다시 되돌아왔다. 


오던 길에 마치 산적처럼 생긴 남자와 역시 산적아내처럼 생긴 부부에게 강원도 씨감자라는 감자를 한 봉지 더 사 왔다. 그사이에 뭔가를 더 사셨는지 검정 봉지를 두어 개 더 들고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손에 든 것들을 차에 실으셨다.


삼랑진역을 되돌아오다가 할아버지께 아까 수리 맡긴 티브이 안 찾으시냐고 했더니 


 “오데! 또 이자뿐네!"


 하신다. 올 때도 이야기하느라 잊고 지났다 하여 오던 길을 돌아서 갔던 데를 다시 찾았다. 그사이 수리를 다 해놨다. 시골 전파상이라 해봐야 뭐 물건이 있겠나 싶었지만, 중고 티브이가 마치 중고타이어 쌓듯 포개어 있는 가게 안에, 다른 중고 물건들로 꽉 찬 틈에 끼듯이 있는 책상 앞에, 너무나 중고스런 옷을 입은 아저씨가, 누런 금이빨을 내보이며 할아버지께 4만 원을 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무시레이! 와 그리 비싼 긴데!"

 중고 아저씨는 티브이 2만 원, 나머지는 각각 만 원씩이면 싼 거 아니냐며 되받아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잠시 있더니 큰일 났다며 아까보다 더 경악스러운 표정이 된다. 티브이 찾는 것을 깜박 잊고 시장에서 돈을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반사적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반사적으로 돈을 꺼냈다. 


 굽이굽이 산길을 다시 돌아오는 길에 고갯마루에 있는 포장집에 들렀다. 원색 티를 입은 쥔 여자가 나와서 아주 공손한 자세로 연신 인사를 하면서 가게로 인도하는 손짓을 한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이 길을 따라 원동에서 삼랑진까지 볼일을 보러 갈 때면 늘 작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이곳에서 어묵을 드셨다고 한다. 주인 여자는 차를 타고 왔기에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며 나보고 


 “오데서 왔능교? 누군교?" 


 하고 묻는 얼굴이 은근히 새살스럽다. 긴 꼬치에 둘둘 말아 낀 사각 어묵의 따끈한 국물은 잠깐 이런 곳에 앉아 먼 데 산을 보면서 먹는 특별한 맛을 준다. 


고갯길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앉아 있던 주인이나, 산골에서 내려와 혼자 먼 길을 가던 사람이나, 우선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뜨끈하고 짭조름한 어묵 국물에 얼큰한 땡초가 담긴 간장에 어묵을 찍어 먹는 기분이 여간 맛깔난 게 아니다. 


할아버지와 안면이 많은 주인아저씨가 고로쇠 물을 들고 들어오면서 인사를 나눈다. 할아버지는 얼른 고로쇠 물 이야기를 꺼내면서 물이 나오냐고 물으시며  


 “올해는 이상케 물이 안 나오고 마 딱 끊어지삐니 참 모르겠다!"


하신다. 그 말에 주인아저씨가 나와는 달리 해박한 지식을 나름대로 할아버지께 늘어놓으신다. 


 “할배요! 윤달이 들모 한 달이 더 있으니까 지금 원래 삼월이 되야는데 아즉도 이월로 되삤다 안카나. 원래 경칩 이짝저짝 보름 안에 물이 나와삐는 긴데 경칩이 벌써 안 지나갔나. 그카니 나무도 이자 순을 티야는데 을매나 힘이 들겠노! 그카니 물이 안나와삐는기라!"

 “와, 뭐 그란게 다 있노!"

 “그카니 올해는 고마 삼월에 경칩이 들와갖꼬 윤달 땜에 그케 된 긴데 나무는 벌써 즈끄리 알고 고마 버얼써 문 닫아삔기라!"


 나름대로 심오하고 해박한 고로쇠나무의 철학이 잠시 뜨겁게 펼쳐진 포장마차는 흥분된 기운으로 들썩했다. 사람들의 입심과 새로운 지식을 나누는 이런 자리가 할아버지에겐 얼마나 즐거운 나눔의 전당인지 짐작해 보았다. 이게 할아버지의 큰 행복과 즐거움 중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워낙 일찍 서둘러서인지 집에 돌아와도 아직 오전이다. 나는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한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대추나무 묘목을 심으시느라 밖이 떠들썩하다. 동네라 그래야 여덟 가구가 전부인 산골 마을을 위에서 아래로 들고나시는 통에 앞집 아주머니 두 분이 나오셨다. 할아버지는 아까 장에서 삼천 원 주고 사 온 민물고기를 삼만 원 주고 사 온 고기라며 펼쳐 보인다. 아주머니들은 뭔 고긴데 삼만 원씩이나 줬냐며 반색을 하고 보더니 


 “하이고 이기 뭐시기 아이가! 하이고, 할배요, 이딴 괴기는 와 사왔능교!"


 대번에 면박이다.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우리 주인집 할아버지가 엉큼하신 건지, 아니면 진짜 그사이에 또 단기 기억상실증이 걸린 건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만약 단기 기억상실증이 걸린 게 아니라면 봉지를 푸는 동시에 탄로가 날 거짓말을 한 할아버지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까 장에서 왕소금을 뿌리던 좀 모자란 채소 가게 총각처럼 하릴없이 웃음이 나온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할아버지가 문을 두드리셨다. 아까 빌린 돈을 해가 지기 전에 갚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 우체국에서 돈을 찾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빌린 돈 외에 내 차에 든 휘발유값을 얼마 쳐서 주시겠다고 한다. 난 어제 내가 고로쇠 물값을 드리려고 얼마냐고 물었을 때, 할아버지가 내게 지었던 표정을 그대로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역시 내가 지었던 미안한 표정을 그대로 지으며 가셨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산골의 긴 봄날이 저물고 있는 석양이 드리워진다.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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