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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연재 | 산중일기

아버지를 부탁해요

요양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최찬희 작가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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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스틸컷

뭉근하게 부드러워진 미역국이 들통에서 끓고 있다. 친정어머니의 생신에 가져갈 음식을 이것저것 준비하면서도 어젯밤 남동생에게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려 심란하다. 올케가 셋이지만 둘은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한국에서는 외며느리와 다름없는 둘째 올케의 고충도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은 참고 넘기기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그만 팔불출 동생만 허둥대게 만들었다.

직장 때문에 같이 못 오는 아내 대신 선물을 준비했다고 에두르는 동생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옛말에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매운 시어머니 노릇도 한다고 했던가. 시 할머님과 시부모님, 다섯 시누이와 두 분 형님 등 여덟 남매의 시댁에서 살면서 세 분 어른들의 장례를 모두 집안 마당에서 치른 나로선 친정 올케들에게 자꾸 서운한 마음만 드니 큰일이다.

파주에 있는 친정집에 들어서니 그동안 운동을 잘 못 하셨는지, 눈에 띌 정도로 더 여위신 어머니와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나를 반기신다. 우리 다섯 형제가 다 출가하고 난 집에 동그마니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 자주 와 뵙지도 못하는 딸인데도 어머니는 늘 뵐 때마다 나를 대견스러워하신다.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을 챙겨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요양병원으로 가기 위해 나서니 문득, 하늘하늘 날아가던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던 시절로 돌아간 듯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 지은 요양병원은 로비가 호텔처럼 잘 꾸며져 있다. 음식도 좋아서 처음 아버지를 이곳에 모실 때는 마치 내 할 일을 다 한 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고 싶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두고 돌아설 때는 느닷없이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처음 맞닥뜨리는 낯선 슬픔과 죄책감에 당황하여 솟아나는 눈물이었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셨다는 어느 지인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내가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침상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반기시는 그리운 얼굴. 반가움과 죄스러움이 교차해 눈물부터 그렁대는 딸은 늘 얼굴도 똑바로 못 든 채, 여위신 아버지의 몸피를 끌어안는다. 소변 주머니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실 텐데 누가 그리 가족처럼 살갑게 살펴드릴까. 혼자서 얼마나 외로우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민다.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대소변과 걸음이 불편하신 것 외에는 그래도 건강하신 아버지께서 문득 예전의 위엄이 살아나시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 앞으로 어머니는 연신 음식을 밀어 놓으신다. 나는 숙제 못 한 아이처럼 허둥대며 아버지의 몇 안 되는 소지품을 정리한다. 시부모님은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따뜻한 안방에서 보내드렸는데, 막상 나를 낳아 길러주신 친정 부모님을 내 손으로 모시지 못하니 출가외인이란 말이 괜한 게 아니다.

공무원의 박봉으로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늘 절약이 몸에 배신 아버지! 파주에서 서울로 통학하는 내게 행여 첫차라도 놓칠까 봐 새벽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어떻게 갚을 길이 있겠는가. 언제나 내 설 자리가 든든히 마련되어 있는 시댁과는 달리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친정의 내 마음자리는 송곳처럼 아프다.

우두커니 앉아 서로를 바라보시면서도 별말씀 없으신 두 분의 상봉이 끝나간다. 어릴 적에는 넓기만 하던 골목길이 커서 보면 좁아 보이는 것만큼이나 두 분의 어깨가 왜소해 보여 가슴이 뭉클해진다. 병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간병인과 간호사, 물리치료사에게 두루두루 고개를 숙인다. 


 “아버지를 잘 부탁합니다!"


그 말밖에는 달리해드릴 게 없는 송구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제 가장 힘든 헤어짐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두 분의 마주 잡은 손을 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야 한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아버지는 잡은 손을 놓자마자 일어나시며 당신 옷을 찾으신다. “여보, 당신은 안즉 여기 좀 더 계시소!"라는 엄마의 말씀에 아이처럼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침상에 도로 앉으신다. 몇 밤만 더 자면 집에 가실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를 뒤로하면서 어머니의 눈물 바람이 시작된다.


 “내가 니 아부지를 내 손으로 끝까정 모실라 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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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스틸컷

 

당신이 평생 해 오신 남편의 수발을 놓으실 때 이미 삶의 마지막을 대하듯 단호하고 의연하셨던 어머니도 이 시간만큼은 무너지는 심정을 붙잡지 못하신다. 머리가 희끗해진 둘째 딸은 한층 더 죄인이 된 무참함을 추스르며 어머니 손을 붙잡고 병실을 빠져나온다. 아버지를 이곳에 모셔놓고 돌아서던 첫날,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던 낯선 죄책감으로 쏟아지던 오열! 오늘은 눈물 대신 말수 없이 차창만 응시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린다.

다섯 자식과 남편의 빈 자리에 혼자 계시면서 매사 전화를 붙들고 사시는 어머니도 사실은 얼마 전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을 철렁철렁하게 만든 어머니의 섬망 증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나를 보시던 그 냉랭한 눈빛! 그것이 치매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습하던 그 무서움을 형언하기란 불가능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자꾸만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찾았다.

어느 때는 요양사가 없는 틈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다 대고 찧었다고 하셔서 놀라서 달려갔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신다. 지금은 약 때문인지 좀 덜 하시지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이러다가 어머니마저 요양원에 가시게 되면 어떻게 할지, 부모님을 생각하면 무거운 돌멩이가 명치 끝에 매달린 것 같다. 

노인이 되면 겉모습처럼 뇌세포도 늙어서 그렇게 정신을 잃는 걸까. 굴곡진 한 시대를 몸으로 겪어내신 우리 부모님의 강인함이 왜 이리 한순간에 거품처럼 사그라지는지. 과학자들은 임신 중에 품은 태아의 세포가 엄마의 뇌로 들어가 새로운 신경세포로 자란다고 말한다. 이제는 병이 든 뇌세포를 자식인 내가 지켜줄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엄마의 뇌로 다시 들어가고픈 심정이다. 끈 떨어진 풍선처럼 멀리멀리 사라지는 기억으로 인해 점점 더 낯선 표정으로 변해 가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사막에 홀로 선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영화 ‘노트북’이나 ‘아무르’에서 나왔던 주인공들처럼 당대의 석학이나 예술가들도 치매 앞에서는 다 속수무책이다. 헤어짐에 대한 아무런 출구도 마련하지 못한 채, 멀리 사라졌다 오기를 반복하는 부모님의 의지가 얼마나 버텨주실지. 나 또한, 내 의지가 산산이 해체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내 자식들은 또 누구에게 나를 부탁하게 될까.

집에 돌아오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시려는지 어머니께서 앞집 할머니를 부르신다. 당신 생신 턱을 내신다며 함께 나가실 참이다. 조금 전 아버지와의 상봉 때와는 달리, 한결 힘찬 목소리로 할머니를 부르시는 어머니는 또 다른 분처럼 생기 있어 보인다. 어머니는 그사이에 또 아버지를 잊어버리신 걸까. 

어린 시절, 내가 늘 걸어 다녔던 우체국 옆길로 두 분이 ‘구르마’라고 부르시는 보행기를 붙들고 살살 걸어가신다. 그 뒷모습이 황혼이 내린 시골의 한가한 풍경에 녹아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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