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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 스토리 (18)

나의 ‘긍정템’, ‘홀리데이 블렌드’

김명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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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첫 월요일, 시큰한 겨울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가을로 접어든 지 얼마나 됐다고, 성격 급한 겨울이 계절의 문턱을 힐끔거리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얼어붙게 만드는 이 계절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래도 일 년에 한 철만 즐길 수 있는 ‘홀리데이(Holiday) 블렌드’ 커피를 만날 생각에 진심으로 기꺼웠다. 묵직한 고소함과 진한 풍미가 어우러진 커피 한 잔이면 출근길 칼바람도 반가울 지경이다. 온몸이 꽁꽁 얼었을 때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향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내게 겨울은 ‘홀리데이 블렌드의 계절’이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다. 함께 일하던 선배들은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막내를 커피의 세계로 안내했다. 내가 마신 커피의 대부분은 선배들이 샀지만, 사회초년생에게 커피 한 잔 값은 부담스러웠다.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에 메뉴판에서 제일 값이 덜 나가는 아메리카노로 골랐다.

실수투성이인 후배가 뭐가 예쁘다고, 선배들은 커피 마실에 나설 때면 나를 챙겼다. 덕분에 광화문에서 손꼽히는 카페 이곳저곳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 그곳의 분위기, 작은 소품 하나, 커피잔의 모양, 곁들인 디저트, 우리와 함께 커피를 즐기던 손님들의 여유로움까지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맛보기도 전에 커피의 맛을 먼저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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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우리 부부의 매개이기도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아침마다 별다방에 들렀다. 그걸 알고 남편은 매일같이 모바일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연애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완곡하게 그의 마음을 거절했지만, 아랑곳없이 커피를 챙기는 정성과 그 안에 녹아있던 진심에 어느 순간 물들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얼마간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편두통에 시달리던 임신 중기, 약이라도 받아올 생각으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임신 전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느냐고 물었다. 이날 임신부용 두통약 대신 ‘하루에 카페라테 한 잔’을 처방받았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길 건너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두유를 넣은 카페라테가 어찌나 간절하던지. 그날 커피의 맛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거짓말처럼 편두통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커피는 이유 없이 좋은 ‘긍정템(긍정+아이템)’다. 어쩌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꼽을 수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온통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에 휩싸여있다가 커피 향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기만 해도 살짝 누그러지는 ‘이완 효과’까지 경험했으니 말이다. 커피 한 모금 머금고 나면 짜증, 조급함, 온갖 걱정들이 부정과 긍정의 중간 정도로 희석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감을 끝낸 다음 날,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느긋하게 즐길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살아낸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워킹맘을 위한 ‘작은 보상’이자 ‘위로’다. 조금은 힘들어도 기꺼운 마음으로 다시 나의 길을 걷게 해주는 ‘열정 부스터’다.

이번 주는 ‘홀리데이 블렌드’와 함께 겨울을 즐겨볼 생각이다. 일 년을 기다린 이 커피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넬까. ‘지난 일 년 동안 참 고생 많았다’며 마음을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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