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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 스토리 (13)

2년전 괌, 작년 싱가포르, 올해는 '집콕'

여행 준비하는 재미, 돌아와 되새기는 맛


일 년에 한 번은 가족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패턴의 일을 하다 보니, 휴가 날짜 한번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같은 기간에 함께 쉴 수 있는 건 명절 연휴가 유일했다. 양가 부모님은 이런 우리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다. 추석 연휴만은 오롯이 세 식구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여행을 계획해보라고 권했다. ‘정말 그래도 될까?’ ‘괜히 죄송한데….’ ‘그래, 언제 외국에 나가보겠어. 저지르자.’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혔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추석 일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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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추석 연휴 첫날, 괌행 비행기에 올랐다.  생후 24개월까지 아기는 비행기를 무료로 탈 수 있다는 데 혹해 '우리에게 여행을 가라는 메시지'라면서 합리화했다. 여행경비를 좀 줄여보겠다고 저가 항공을 선택했는데, ‘무료’는 ‘비행기를 태워주기는 할게’라는 뜻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를 안고 좁은 자리에 앉아 왕복 10시간을 이동하는 동안 엉덩이는 감각을 잃었다. 혹여 아이가 보채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느라 쥐가 난 줄도 몰랐다.      


여행하는 내내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건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부부 둘만을 위한 신혼여행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현지 음식은 유아식을 먹는 아이에게 너무 자극적이었다. 아이는 (청소는 했겠지만) 깨끗할 리 없는 호텔 방바닥을 집 거실 마냥 맨발로 뛰어다녔다. 높은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내 몸을 안전 가드 삼았다. 열대 기후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물놀이 계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맛보는 음식, 처음 느껴보는 이국적인 정취…. 내게도 온통 처음인 그곳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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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 땅을 밟자, 익숙한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집 떠나면 고생이야.’ 속마음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다음 날 출근길이 개운할 리 없었다. 여행 가방도 일주일에 걸쳐 정리했던 것 같다. ‘고생을 사서 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다음에 가면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닷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하던 아이의 표정도 떠올랐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새파란 바다와 파스텔 톤 하늘은 현실감이 떨어져 여러 번 눈을 비비게 했다. 1kg짜리 티본스테이크와 곁들였던 드래프트 흑맥주, 통 양파를 꽃잎 모양으로 손질해 통째로 튀긴 양파 튀김도 잊을 수가 없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여행 사진 속 우리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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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딱 석 달 후. 우리는 1년 뒤 추석에 떠날 싱가포르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휴양을 목적으로 한 이전 여행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싱가포르 동물원을 앞세워 볼거리, 먹을거리로 가득 채운 화려한(?) 일정을 계획했다. 그렇게 고생해놓고 석 달 만에 싱가포르행을 결정하다니. 그것도 일정 내내 싱가포르 유명 관광지를 대충 훑고 오자는 원대한 목표까지 세웠다.


재미있는 건, 무리한 스케줄이라는 걸, 힘들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추석이 오길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일하다 쉬는 틈을 타 맛집을 알아보고 그곳에 가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어떤 메뉴를 주문할까,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 여기 맛있는 맥주가 있다던데, 단 몇 분이지만, 다시 책상에 앉을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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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세운 여행 계획은 앞만 보고 살던 맞벌이 부부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줬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남편은 어김없이 말했다. “싱가포르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농담을 던지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해 추석 연휴는 싱가포르에서 보냈고, 얼마 후 다시 발리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올해 추석 연휴, 나는 집에서 글을 썼다. 코로나 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일찌감치 티켓 환불을 요청했다. 한동안 여행 취소 후유증을 겪었다. 떠나지 못한다는 걸 믿지 않다가 부정하다가, 이제는 포기를 넘어 체념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적어도 앞으로 2년은 해외여행이 어려울 거란다. 무슨 낙으로 일 년을 보내지? 뭘 하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버티지?

고민 끝에 2년 후, 아니 그 이후라도 언젠가는 떠날 여행을 계획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 혼자 유럽여행’. 올해 회사에서 지원하는 해외 연수 대상자였다가 기약 없이 미뤄지긴 했지만, 나 혼자 유럽 곳곳을 여행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버텨보기로 했다. 고작 두 번이었지만, 지난 여행의 추억도 소환해볼 생각이다. 하루빨리 떠날 수 있기를.


글ㅣ 김명교
12년 차 교육 기자다. 집에선 다섯 살 달콩이의 엄마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취재원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잘 키워보자’ 했지만, 워킹맘의 현실 육아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무너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am-un)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를 일으키고 마음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글을 쓸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글 속에 찰나를 담아내고 싶어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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