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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 스토리 (9)

만사 제치고 호텔서 보낸 외박

"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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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외박을 감행한다. 하룻밤 동안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집을 나온다. 잠옷, 세면도구, 책 한 권, 와인 한 병, 수첩, 볼펜 한 자루면 충분하다. 평소 들고 다니던 가방에 들어갈 만큼만, 집 나간다는 게 티 나지 않을 정도만 담아야 한다. 

나가기 전, 가장 어려운 관문이 남는다. 아이에게 허락 구하기. 하룻밤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느냐가 여기에 달렸다. “엄마, 잘 다녀오세요!" 현관을 나서면 바깥 공기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크게 숨 한 번 몰아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곳은 일상을 ‘일시 정지’하는 장소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순백의 침구, 가지런한 집기는 물론 고요한 분위기까지. 이곳에서만큼은 지금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 

주변에 있는 유명 수제 맥줏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기, 책 읽다 졸리면 자기, 창밖 보면서 넋 놓기, 그러다 떠오르는 게 있으면 수첩에 끼적이기, 침대에 늘어져 있기, 눈 떠질 때까지 늦잠 자기, 자고 일어나 조식 먹기…. 고작, 이걸 하려고 외박까지 하나 싶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를 누리려면 집과 회사가 아닌 곳이라야 한다. 

집에서는 잠시 미뤄둔 집안일이, 회사에선 마감해야 할 기사들이 마음을 괴롭힌다. 애써 외면하려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해질 뿐이다. 일상과 공간을 분리해야 잠깐이나마 멈춰 설 수 있다. 내가 호텔로 떠나는 이유다. 

첫 외박은 2년 전. 아이는 엄마와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화장실에라도 가려 하면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직업 특성 때문에 늘 사람을 만나야 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피로감을 느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전송되는 메시지 때문에 휴대전화를 구석에 처박아둔 적도 있었다. 체력과 정신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넋 나간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런 내게 남편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쉬었다 오는 게 좋겠다, 말했다. 

그렇게 그 날만 기다렸는데, 전날부터 아이가 고열에 시달렸다. 감기 때문에 편도가 부은 탓이었다. 몸이 편치 않으니 더 엄마를 찾았다. 칭얼거림도 심해졌다. 밤새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나니 도저히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애 엄마가 외박은 무슨.’ 짐가방을 풀었다. 다음 기회에 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이 등을 떠밀었다. 조용한 호텔 방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첫 외박은 시도했다는 데 의의를 둬야 했다. 성공적인 일탈을 위해선 아이의 컨디션을 잘 살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집을 두고 굳이 돈 들여 호텔에 간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가성비 호텔 정보를 알아봐야 하는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성수기를 피해 프로모션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집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호텔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어 ‘리셋’된 느낌을 주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을 해봤는데,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어요. 어떤 작가의 에세이에서 본 건데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집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세탁기만 봐도 ‘저걸 돌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오직 일상의 상처와 기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시내 호텔도 괜찮아요."

 

글ㅣ 김명교
12년 차 교육 기자다. 집에선 다섯 살 달콩이의 엄마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취재원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잘 키워보자’ 했지만, 워킹맘의 현실 육아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무너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am-un)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를 일으키고 마음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글을 쓸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글 속에 찰나를 담아내고 싶어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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