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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 스토리 (2)

전투복과 굽 없는 신발로 무장한 출근길

우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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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인터뷰나 취재가 있는 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집에서 회사를 오가는 길은 꽤 익숙해졌지만, 처음 가는 길을 직접 운전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시간 약속이 잡힌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20분 전에는 도착해야 마음이 편하다. 

갈아탈 역과 도착 시각을 확인한 후 지하철 한편에 자리 잡았다. 미리 정리한 질문거리를 읽고 놓친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 처음 만나 어떤 인사를 건넬지 고민하다 생각의 흐름이 끊겼다. 그럴 땐 애써 생각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하루 중 얼마 되지 않는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이 맛에 지하철을 탄다. 

나와 함께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을 살폈다. 출근길 아니랄까 봐, 표정 없는 얼굴 일색이다. 출근길이 즐거울 순 없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모습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 피식 웃었다. 

쓰일 데 없는 온갖 잡념 사이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 치마에 면티, 운동화 차림이었다. ‘믹스 앤 매치’ 패션이 인기라지만, 옷 잘 입는 ‘패피(패션+피플의 줄임말)’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이내 ‘전투복’ 입은 워킹맘 동지임을 알아챘다.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방의 벌어진 틈 사이로 업무용 블라우스와 구두가 살짝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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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 굽 있는 분홍색 샌들을 장만했다. 그래 봐야 3㎝ 정도. 모처럼 마음이 달떴다. 어울리는 옷을 고르느라 여러 번 옷장을 여닫았다. 고작 샌들 하나에 출근길이 기다려졌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3년 동안 편한 신발만 고집했다. 디자인이나 유행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옷을 입든 도드라지지 않는 검은색이면 됐다. 출근 준비하면서 아이도 챙기려면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했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고 중심을 잃을 때가 잦았다. 나와 아이의 안전을 위해 굽 높은 신발은 구석으로 밀어뒀다. 옷차림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니, 워킹맘의 전투복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주문한 샌들이었다. 비록 처음 신은 날, 양발에 물집이 잡혀 신발장으로 향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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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I Don't Know How She Does It, 2011)’에도 일과 육아를 완벽하게 해내려는 또 한 명의 워킹맘이 나온다. 주인공 케이트는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는다. 하이힐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을 상징하는 듯했지만,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하이힐을 신고 뛰기까지 그녀의 발은 물집투성이였을 것이다. 욱신거리는 발바닥과 종아리를 밤마다 주물렀을 테다. 워킹맘 케이트가 어떤 마음으로 하이힐에 올랐을지 짐작 가는 대목이 있다. 


“이건 마치 저글링과 같아.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내게 공이 오면 던져버리면 돼. 그렇게만 되면 전혀 문제없어. 하지만 만약 공 하나라도 놓치면? 모든 걸 망치는 거지." 

워킹맘의 출근길은 우아하지 않다. ‘출근 전쟁’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세팅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며 회사 출입문을 들어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아는 워킹맘은 그렇지 않던데?’ 혹시 주변에 그런 워킹맘에 있다면, 직장인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 갈아입을 옷과 구두를 챙길 뿐임을, 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터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티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다시 여름이 왔다. 1년 전 신발장에 처박아뒀던 분홍색 샌들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운전석 옆자리에 뒀다. 엄마가 아닌 커리어우먼으로서 돋보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신을 수 있게.

글ㅣ 김명교
12년 차 교육 기자다. 집에선 다섯 살 달콩이의 엄마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취재원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잘 키워보자’ 했지만, 워킹맘의 현실 육아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무너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am-un)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를 일으키고 마음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글을 쓸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글 속에 찰나를 담아내고 싶어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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