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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 | 송종찬의 시베리아 유랑기 (24)

월 100만원 받고 30만원 표 사는 사람들

러시아인들의 예술사랑

송종찬 시인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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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거리 곳곳에 붙은 공연 포스터

 

12월은 대체로 차분하다. 율리우스력을 채택한 정교 전통에 따라 크리스마스가 1월7일이라서인지 연말에도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수 없었다. 산타클로스를 내세워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거리의 간판은 오페라, 발레, 콘서트를 알리는 광고들로 가득 찼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중순이었다. 퇴근길에 외투를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전철역으로 가고 있었다. 슈킨스까야 지하철역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였다. 한번은 꽃을 사면서 할머니에게 넌지시 말을 붙여본 적이 있었다. 혁명가였던 남편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전선으로 끌려간 아들의 생사도 모른다고 했다. 아들과 남편을 기다리다 청춘을 다 보냈을 할머니의 가슴에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혁명과 전쟁을 다 겪고도 끝끝내 살아남은 할머니가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들꽃처럼 보였다.

러시아 여인들은 외관에 무척 신경을 썼다. 여인에게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년을 넘길수록 화려하게 치장했다. 여자들이 체육복을 입은 채 동네 마트에 가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가까운 곳을 갈 때도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었다. 러시아는 심각한 여초 국가다. 남자가 부족한 나라에서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잘 보이려고 노력했는지 모른다.

퇴근 길에 만난 꽃을 팔던 할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외투가 참 멋지다는 인사를 건네며 어디 가는지 여쭤보았다. 그녀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보러 간다고 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20만원 안팎의 연금을 받는다 해도 오페라 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호사일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가 한 때  발레리나이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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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예술 사랑은 유난하다. 고작 백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이삼십 만원 하는 공연표를 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는 이-삼백석 규모의 소규모 극장이 많다. 소극장에 갈 때마다 젊은 이들보다 백발의 할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할머니들은 딱딱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미동도 없이 피아노나 바이올린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소녀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비록 곡절의 삶을 살아왔지만 깊게 패인 주름살 위에서 아름다운 화성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굶어도 정신의 빈곤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자존심. 러시아인에게 공연장과 미술관에 가는 것은 연례행사가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12월에 보았던 또 다른 풍경이다. 토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시내로 차를 몰았다. 한 잔의 커피보다 휴일의 게으른 분위기에 젖고 싶었다. 승용차 계기판의 외기 온도는 영하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적마저 드물어 추위가 유리창에 늘어붙는 듯했다. 구세주성당 쪽으로 좌회전하는데 줄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겨울날 아침에 뭐 대단한 일이 있는지 의아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푸시킨 미술관이 나오고, 길게 늘어뜨린 현수막에는 샤걀의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휴일 아침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샤갈의 특별전을 감상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었던 것이다. 소련시절 빵을 사려고 줄을 길게 섰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그림을 감상하려고 혹한의 아침에 줄을 서있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인터넷에서 샤갈의 그림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소녀들이 겨울들판의 야생화처럼 보였다.

러시아인의 예술 사랑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모스크바에 세워진 980여의 개 동상 중 레닌동상을 제외한 대부분이 작가와 예술가들이다. 한겨울 거리를 지나갈 때 푸쉬킨이나 차이콥스키 동상 아래 놓인 붉은 장미꽃을 보면 예술혼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동안 문학과 멀리 떨어져 살았는데 자연스럽게 시와 다시 가까워졌다. 출근길 FM방송에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시,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선생님이 읽어주던 예세닌의 시, 술자리의 건배사를 할 때 인용되던 푸시킨의 싯구 등은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인이 자국의 문화와 예술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 있다.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열렸다. 스타디움의 조명이 일시에 꺼지자 빙판이 캔버스로 바뀌고 샤갈과 칸딘스키의 그림이 펼쳐졌다. 이어 빙판 한 가운데 피아노가 놓이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연주되었다. 세헤라자데의 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볼쇼이와 마린스키극단의 발레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다시 살아나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올림픽은 끝났는데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귀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음이 들리고, 어두운 밤 하늘에는 샤갈의 색상이 펼쳐지고, 바람 속에 푸시킨의 시가 실려오는 듯했다.

예술이란 데페즈이망 즉, 낯설게 표현하기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미술, 음악, 시로 표현하는 것이다. 낯선 음과 음, 색과 색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러시아는 극과 극 사이가 아주 멀어 비유가 새롭고 깊다. 암흑의 겨울이 있는 반면 백야가 있다. 잔디는 파란데 그 위에 낙엽이 떨어져 뒹군다. 사과는 빨갛게 익어가는데 사과 위에 눈발이 쌓인다. 성당의 촛불만큼이나 술집의 불빛도 빛난다. 전쟁과 혁명은 삶과 죽음의 색채를 뚜렷하게 대비시켰다.

러시아인의 예술 사랑은 삶에 대한 긍정이자 죽음을 넘어서기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 끝에 카페가 있고, 벽면에 명화 몇 점 정도는 걸려있다. 겨울날 고드름 밑을 걸어가다 보면 가느다랗게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눈 내리는 창 밖, 러시아에 살면서 나는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받아쓰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봄

 

전쟁과 혁명을 모두 겪은 할머니가 지하철역 앞에서

들꽃으로 엮은 제비꽃 다발을 팔고 있었지요

교수였던 남편은 혁명의 깃발 속으로 사라져갔다

밤기차로 전선에 끌려간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마른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적이 없는 철없는 소냐를 위해

오십 루블에 꽃다발을 사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똑똑한 남자는 혁명 때 용감한 남자는 이차대전 때 다 죽고

이념과 폭격 속에서 끝끝내 피어난 할머니와 들꽃과 소녀와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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