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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 | 송종찬의 시베리아 유랑기 (19)

러시아인들은 첫 눈을 기다리지 않는다

샤걀의 ‘눈 내리는 마을’을 떠올리며

송종찬 시인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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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를 보냈던 안암동에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간판을 단 카페가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는 김춘수 시인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카페에 앉아 시집을 읽었다.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배가 고팠지만 애정이 더 고팠던 시절이었다. 

재수를 끝내고 대학에 입학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줄 알았다. 도서관에서 여학생과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는 게 꿈이었다. 촌놈에게 세련된 여자가 다가오는 행운이 생길 리 만무했다.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잡기장에 말도 안 되는 낙서를 써 내려가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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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위키피디아

샤갈을 프랑스 화가로 착각하기 쉽지만 러시아 화가다. 엄밀히 말하면 소련에서 독립한 벨라루스공화국의 비쳅스크 태생이다. 제정러시아 이후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트레찌야코프 갤러리 신관에 가면 칸딘스키, 샤갈, 말레비치 등 러시아 근대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곳에는 혁명 이후 이념에 물든 작품도 볼 수 있는데 가장 이목을 끄는 작품은 샤걀의 대표작인 ‘도시 위로(Above the town)’이다. 작품 연도를 보았다. 작은 안내판에는 러시아혁명이 진행되던 1914 -1918년 사이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도시 위로’는 회색시대에 원색의 옷을 입은 연인이 도시에 작별을 고하며 하늘로 날아가는 작품이다. 전쟁과 혁명의 시기에 얼마나 삶이 고단했으면 하늘로 나는 꿈을 꾸었던 걸까. 캔버스 중앙에는 비쳅스키의 집과 성당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연인이 구름처럼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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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도시 위로'


그림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서니 생경한 장면이 나타났다. 화폭 하단에 한 사내가 엉덩이를 드러낸 채 변을 보고 있었다. 샤갈은 아름다운 작품에 왜 이질적인 장면을 그려 넣었던 것일까. 서적과 인터넷을 뒤져도 그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화폭 속의 보일 듯 말듯 그려진 사내가 암울한 시대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신혼생활을 막 시작한 샤갈은 아내 벨라에게 동화 같은 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샤걀의 화려한 색상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희망의 불씨였다.


김춘수 시인은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도 눈이 온다’고 노래했는데, 실제로 샤갈이 살았던 비쳅스크에는 시월에도 오월에도 눈이 온다. 러시아에서 눈은 낭만이 아니라 생활이다. 눈이 내리면 밤새워 제설차가 거리를 오간다. 세찬 폭설이 내려도 도로가 막혔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직업이라지만 밤새 눈을 치우는 공무원,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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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10월9일 모스크바에 첫눈이 내렸다. 눈은 혁명처럼 하루아침에 세상을 뒤바꿔 놓았다. 창밖을 보니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사과 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강변의 시들지 않은 들풀이 일찍 찾아온 추위 앞에서 새파랗게 떨고 있었다. 철모르는 박새들만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나무 꼭대기를 분주히 옮겨 다녔다.


러시아인은 첫눈을 기다리지 않는다. 첫눈이 온다고 문자를 보내거나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리고 나면 사람의 말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어두워진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 지긋지긋한 날들이 오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째 폭설이 내린 1월 중순, 샤갈의 마을 같은 낭만적인 공간을 찾으려고 외곽으로 나가 보았다. 모스크바 인근의 아르항겔스꼬예 공원은 한적했다. 울창한 침엽수림을 지나 꽁꽁 얼어붙은 모스크바강까지 내려가 보았다. 눈 위에 눈이 쌓여 들과 강의 높이가 엇비슷해진 거대한 설원이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굴뚝 너머로 연기가 올라가는 샤갈의 마을 풍경이 나올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세찬 바람이 황금소나무 가지를 흔들 때마다 눈이 은빛으로 흩날렸다. 설원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다가 뒤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신생의 아침을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걷다가 눈밭 위에 대(大)자로 누워보았다. 몸이 눈 속에 뽀드득 소리를 내며 깊이 잠겼다. 내 몸을 받아준 눈은 침대보다 포근했다. 눈의 입자는 비단처럼 보드라웠다. 눈은 벽이 되어 바람 한 점 새어 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얼음장 아래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구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누워있는 곳이 천상이고 먼 하늘이 지상 같았다. 천국이란 바로 이런 느낌, 가슴이 벅차올랐다.


겨울을 나는 동안 눈은 나에게 종교였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으면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정화되었다. 이런 저런 걱정이 생기는 날에는 야밤에 눈밭으로 나가 기도를 올렸다. 얼음장 위에서 떨리는 가슴으로 올리는 기도는 따스했다. 눈 위에서 무릎을 꿇고 올리는 기도는 간절했다. 

어쩌다 눈물이 샘솟아 젖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가슴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기도는 화살처럼 날아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신의 음성이었다. 가슴으로 들어온 침묵의 언어는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쓴 시의 절반 이상이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겨울을 나는 동안 빨강, 파랑, 노랑의 색상을 띤 샤갈의 마을을 끝내 찾지 못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겨울 내내 하얀 눈만 내렸다. 수천 수만의 눈들은 날개를 달고 내려와 지붕과 공장의 굴뚝을 뒤덮었다. 불안과 초조를 덮어 주었다. 하지만 눈이 내릴수록 사람들은 원색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성당의 수녀님은 화병에 나무줄기를 꽂아놓고 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렸다. 막사에 묶여 있는 말은 들판을 뛰어다닐 봄날을 기다렸다. 샤갈의 마을은 지상에 없지만 봄을 기다리는 자의 가슴 속에 원색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5월7일 모스크바에 눈이 내렸다. 막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사과나무 가지에 눈이 살포시 내려 앉았다. 손가락을 대자마자 눈이 녹아 흘러 파란 실핏줄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오월에 내리는 눈, 첫눈이 내린 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끝눈이 내린 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잊지 못할 첫사랑의 이별처럼 일기장에 ‘5월7일 모스크바에 끝눈이 내렸다’고 메모했다.

 

 

첫눈은 혁명처럼


사상을 팔던 혁명기가 있었지

협동농장에서 노동을 팔던 소련도 저물고

상품을 파는 자본의 시대가 왔지


한 끼의 마른 흑빵을 사기 위해

영혼마저 팔고 돌아서던 길

발 아래 밟히던 첫눈은 어떠했을까


낙엽의 거리에 눈이 내리면

발자국 무성했던 대지도 시리지 않겠다

 

간밤 그대 오시려고

자다 깨다 반복했었는지

창밖 내미는 손길 위에 첫눈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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