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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10)

암흑의 바다 ‘흑해’를 끼고 얄타로 가다

한반도 분단이 결정된 그곳

송종찬 시인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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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얄타 절벽위의  성(제비둥지).jpg
얄타 성벽

 석양을 등지고 세바스토폴에서 다시 얄타로 이동했다. 얄타까지는 84km, 차창을 열자 아이페트리(АЙ ПЭТРИ) 산에서 야생의 내음이 밀려 들어왔다. 저녁놀이 바다 속으로 잠기기 직전 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흑해, 발음만 해도 혀끝에 어둠이 닿을 것 같았다. 그 어두운 바다에 마지막 빛이 퍼지고 있었다. 흑해의 끝에서 떨어지는 태양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뒷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석양이 지자 흑해는 이름 그대로 암흑의 바다로 변했다. 집어등을 단 어선이나 상선이 보이지 않았다. 절벽 아래 갯마을에서 희미하게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달포쯤 절벽 아래 스며들어 파도의 언어를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바스토폴에서 얄타로 가는 중간 지점,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광활한 러시아를 돌아다녔지만 얄타만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은 없었다. 아이페트리산은 높으나 우악스럽지 않았다. 흑해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귀소본능을 자극했다. 얄타는 러시아 황제들의 휴양지로도 유명했다. 

1861년 농노해방이 있던 해에 알렉산더 2세가 산 중턱에 궁전을 건설했다. 1945년 리바디아 궁전에서 열린 강대국들의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분단의 불씨를 제공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관광객이 궁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즐길 수 없었다.

1945년 2월13일 화요일자 프라브다지에 실린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의 사진. 망토를 걸친 루즈벨트는 병색이 짙었다. 군복을 입은 스탈린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대양을 건너온 루즈벨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회담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루즈벨트는 병이 깊어 2주간을 더 리바디아궁전에서 머물렀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2달여 만에 사망했다. 한반도 문제는 정상회담 의제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한 나라의 운명이 세 사람의 가벼운 티타임에서 결정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역사는 필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의 연속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우리 삶에서 계획대로 된 것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마산드라 와이너리.jpg
마산드라 와이너리

 

크림반도는 상처의 역사를 안고 있었지만 아름다웠다. 세계적인 와이너리인 마산드라 지하동굴에서 숙성되고 있던 와인은 병사들이 흘린 피처럼 진했다. 하루치의 양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의 몸에서는 풀내음이 났다. 크림은 아프지만 평화로웠다. 산과 바다는 서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아이페트리산에서 불어오던 바람, 흑해로 돌아들던 해풍,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크림인의 낮은 목소리, 그것은 내가 잊고 살았던 숨결이었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고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 크림은 그리움의 끝이자 이별의 시작이기도 했다.


대륙의 밀실에서

나는 이 겨울
한 송이의 붉은 장미를 사기 위해
밥을 굶어야겠다

집시처럼 떠도는 크림의 여인을 위해
월급을 탕진하고 

속죄인 양 쏟아지는 눈발 위에
뜨거운 코피를 쏟아야겠다

나는 이 겨울
폭설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낮은 의자라도 되어야겠다

대륙을 건너가는 철새들을 위해
밤새도록 책을 읽어주고

이 겨울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는 겨울밤들을 위해
어둠이라도 되어야겠다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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