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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6)

19세기나 지금이나 생사의 갈림길, 두만강

가난한 조선인과 지금의 탈북민

송종찬 시인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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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크라스키노 안중근 의사 단지비 (1).JPG
안중근 의사 단지비

북중러 국경이 가까워지자 핸드폰의 눈금이 사라졌다.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주둔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국경에 인접한 크라스키노는 안중근 의사가 중국으로 가기 전에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한 장소다. 

안 의사는 손가락을 자른 후 「대한독립」을 썼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안 의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하얼빈Harvin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7발의 권총을 발사했고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몇 년 전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장춘으로, 장춘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하얼빈까지 이동했었다. 장춘에서 하얼빈까지 생의 마지막 열차를 타고 가면서 안 의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유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옥수수를 보며 수수깡을 씹던 고향과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쓰던 뤼순 감옥의 독방은 차가웠고 아침 햇살이 가늘게 비치고 있었다.

세 번의 국경수비대 검문과 러시아 세관을 통과하자 중국의 훈춘이 나왔다. 불과10여 킬로미터만에 안되는데 시차는 마이너스 3시간이 되었다. 길가 상점의 간판에는 한글, 한자, 키릴문자가 뒤섞여 있었다. 훈춘 시내로 곧장 들어가는 대신 러시아, 중국, 북한이 만나는 삼국의 접경지대로 갔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권하세관을 지나면서 두만강의 폭은 조금씩 넓어져 갔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뛰어들면 금방이라도 건널 수 있는 땅, 강 건너 북한의 산야가 손에 잡힐 듯했다. 

두만강은 예나 지금이나 생과 사의 경계였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 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외투를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11-3 중국 방천에서 바라본 두만강철교.JPG
두만강 철교

남편을 러시아로 떠나보내고 잠 못 이루는 새댁의 간절한 마음을 노래한 파인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란 시가 생각났다. 오늘날에도 많은 북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두만강을 따라 한 시간여를 달려 삼국의 경계지대인 방천에 도착했다. 방천은 중국인이 동쪽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중국은 러시아에 막혀 동해로 나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전망대에 올라 두만강 철교 너머로 동해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외할아버지를 따라 두만강을 철교를 건너던 다섯 살 때 기억을 가끔씩 나에게 들려주시곤 했었다. 나라를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아픔을 잘 모르리라.

북한에서 들을 태우는 연기가 헐벗은 산을 감싸고 느리게 올라갔다. 러시아의 마지막 기차역인 하산Khasan역에서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온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었다. 러시아와 북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돌아서자 두만강 자락에 석양이 곱게 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밀려드는 어둠은 국경을 지워버렸지만, 튼실한 두 다리를 가지고서도 넘을 수 없는 국경선은 머릿속에서 더 선명해져 갔다.

#그대의 공화국

사랑이 깊으면 독재가 되더라 

아서라 아서라 골백번 다짐해보지만

그대 안의 공화국에 오늘은 삼엄하게 눈이 내린다 

건너지 못할 깊은 강 

미루나무 앙상한 가지에 걸려있는 녹슨 철조망 

잊어라 잊어라 수만 번 입술을 깨물어보지만

북방의 바람에 펄럭이는그대라는 깃발

<계속>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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