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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5)

정주영 회장이 선점한 블라디보스토크

구한말 조선인들의 이주행렬을 돌아보며

송종찬 시인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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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간밤의 숙취를 달래기 위해 호텔에서 간단하게 미역국으로 해장을 했다. 타국에서 아침 식사로 미역국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현대호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현대가 문을 연 시점은 1997년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바닷바람만 쌩쌩 불던 때로, 정주영 회장이 이 지역을 선점하라며 직접 부지까지 물색해 주었다고 한다. 러시아인은 호텔 현대가 군항이었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자본주의를 앞당겼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중국 국경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여 킬로미터. 그 중간에 극동지역의 슬라비얀카Slavyanka, 자루비노Zarubino, 포시에트Posyet항을 지나가야 한다. 러시아 국경지대는 예나 지금이나 버려진 땅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고 늪과 잡초만 무성했다. 이 황무지로 1800년대 말 우리 선조는 유민이 되어 찾아 들었다. 일제의 압박을 피해, 먹을 것을 일구기 위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연해주로 왔다.

자루비노항.jpg
자루비노항 전경

우수리스크Ussuriysk로 가는 길에서 왼편으로 빠져 나와 크라스키노Kraskino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늪지대에서 자라난 갈대와 나지막한 산야의 두어 그루 소나무가 한가롭기만 했다. 이 들판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난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통나무 카페에 들렀을 때 호랑이 가죽이 벽에 걸려 있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두만강을 건너와 백두대간을 타고 태백산, 지리산까지 내려오곤 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의 변경 쪽으로 100여 킬로미터를 지나자 자루비노항이 나왔다. 자루비노항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물류기지에는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적재될 자동차가 있고, 야적장에는 고철이 쌓여 있었다. 방파제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소년들이 멱을 감고 있었다. 피부가 새까맣게 그을린 막심이란 소년의 어머니는 러시아계, 아버지는 중국계였다. 그는 나를 향해 '코레아?'라고 물으며 할머니가 조선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막심의 할머니는 중국으로 팔려왔던 게 분명했다. 

북방사업을 위해 만주를 지날 때마다 연변주 출신의 윤동주 시인을 생각했다. 또 연해주 일대를 다닐 때는 이용악의 시를 떠올렸다. 이용악 시인이 태어난 곳은 함경북도 경성으로 연해주와 가까운 곳이다. 시인은 소금 밀매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를 자주 드나들었다. 국경을 넘다가 또는 국경 밖에서 고향을 그리워한 채 조선인이 죽어나갔다. 몸을 팔던 전라도 가시나도, 밀매를 하던 이용악의 아버지도 쓸쓸히 이국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용악은 가난, 죽음과의 싸움을 벌이면서도 절망에 기대지 않고 서정을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이용악의 북쪽이란 시를 읽다 보면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리면서 나도 모르게 북쪽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계속>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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