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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연재 | 시베리아 유랑기 (3)

바이칼 호수도 지구처럼 ‘푸른 빛’이었다

韓민족의 시원이 서린 성소

송종찬 시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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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가는 길.jpg
이루쿠츠에서 바이칼 가는 길

바이칼 호수를 빼놓고 러시아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담수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호수. 지금이야 직항을 타고 몽골 상공을 거쳐 반나절에 갈 수 있지만 처음으로 방문했던 2005년만 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서 가야 했다. 

일행들은 이루쿠츠크역에서 횡단열차를 타고 호수에서 제일 가까운 슬류잔카Slyudyanka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의 과음으로 피곤했을 텐데 모두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한(韓)민족의 시원이 서린 성소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성지순례를 가는 기분이었다. 절경을 품고 있지도 않은 호수가 왜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까. 그 이유는 바이칼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우주의 고요와 때묻지 않은 순수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울란우데Ulan-ude, 치타Chita까지 가는 횡단열차에는 중국과 북한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벌목공이었다. 노동력이 부족한 러시아는 시베리아 목재를 베기 위해 인근의 북한과 중국의 노동력을 빌려 쓰고 있었다. 러시아가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중국인의 유입이었다. 중국인들이 시베리아에 숨어들 경우 찾을 길이 없었다. 

슬류잔카역에서 정차한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역사를 빠져 나와 5분여를 걷자 바이칼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를 여행하면서 "지구는 푸른빛이다"라고 외쳤었는데, 바이칼도 푸른빛이었다. ‘지구의 푸른 눈동자’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호수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3-2 바이칼은 바다.jpg

일행 중 몇몇 사내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팬티 바람으로 풍덩 물속에 뛰어 들었다. 하얀 쌍방울 팬티가 물결 위에 선명하게 반사되었다. 나도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옷을 벗어 던지고 세례를 받듯 잠수를 했다. 바이칼과의 인연은 첫 키스만큼이나 강렬했지만 짧았다. 

섬 한가운데 샤먼의 전통이 살아 있는 알혼Olkson섬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생활하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바이칼이 늘 궁금했다. 지인들이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바이칼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동료들과 함께 서너 차례 바이칼을 방문했지만 호수 가운데 있는 알혼섬은 발길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알혼섬을 방문할 기회가 찾아왔다. 본사로부터 상사 분이 바이칼을 방문한다는 기별이 왔다. 화려한 계절이 지나가고 그에게도 겨울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육로 대신 헬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계속>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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