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주말 연재 | 오십즈음에 (30)

그런 관계라면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

“자네, 부인에게 이혼당할 수 있어”

한강 작가  2020-07-25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shutterstock_721419007.jpg

아침에 출근하면 오피스텔 아무도 없는 썰렁한 공간이 나를 맞는다. 책상 주변은 어제 저녁 그대로다. 오직 나 혼자만의 공간이요 세계다. 외로움이, 고독감이 밀려온다. 과연 오늘은 잘 지나갈 것인가. 기쁨이 내 마음을 찾아올 수 있을까.

책상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명상과 기도를 하게 된다. 오늘 출발을 위한 의식절차이다.  

내가 향후 2년간 해야 될 일들은 첫째가 글로 승부하는 것이요, 둘째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첫째를 위해서도 노력해야겠지만 둘째 인품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된다.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감정적일 때가 많다. 대인(大人)의 모습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감정을 절제하자. 


그러려면 설령 감정이 생기더라도 내색을 하지 말도록 하자. 그렇게 겉으로 노력하다보면 속이 바뀌지 않겠나. 또한 말을 적게 하자. 나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내 속을 다 보인다. 좋은 말보다 남에 대한 험담이 더 많다. 헐뜯음, 과장, 거짓말 속에 내 인격 수준과 약점이 다 드러난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한다. 기(氣)를 모은다. 때로는 아예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참선자세로 앉아 약식 단전호흡을 할 때도 있다. 내 정신과 마음, 몸속에서 긍정적 에너지가 나와야 지금 이 시기를 뚫고 성취할 수 있다.

‘성취’란 단어에 정신을 집중한다. 

“성취" “성취" “성취"…. 입으로 ‘성취’를 반복한다.

마음이 안정되어진다. 마음 한가운데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기분이 조금씩 좋아진다.

‘평상(平常)’의 상태, ‘평정(平靜)’의 느낌이 좋다. 바로 이거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판단을 바로 하고, 일도 효율적으로 전념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극복한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더 나은 성취를 위해 거쳐야 하는 ‘어려운 시기’로 생각한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자. 

내가 회사를 나온 것이 성급하거나 무모하거나 감정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나태하고 싶지 않아서, 일상에 묻히고 싶지 않아서이다.  더 이상 작아지거나, 겁 많아지거나, 욕심에 지기 싫어서이다. 

지금껏 쌓아놓은 내 나름의 세계, 기득권, 평판을 다 떨쳐버렸다. 누군가 말했듯 ‘세상에서 잊혀져 버린 사람’이 될 각오를 하고 나왔다. 

shutterstock_1737156311.jpg

한 선배가 말했다. 

“자네, 부인에게 이혼당할 수도 있어."

그때 각오했다. 

그래. 지금 내 상황을 보고 아내가 이혼을 요청한다면 두말없이 받아주리라. 그런 식의 '부서지기 쉬운' 사이라면 헤어지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남편이 안온한 세계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헤어짐을 생각하는 아내, 그 정도로 아내로부터 신뢰를 못받는 남편이라면.

나는 내 아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는 늘 내게 사랑과 믿음을 주었다.

만약 이번 내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면? 나는 벼랑 끝으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 한번이다. 내가 포기한다면 내 인생은 실패로 끝난다. 운명과 타의의 의해 내 인생이 ‘파괴’될 수 있어도, 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선택과 결단은 내 스스로 했고 내 책임이다.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포기란 없다.

하나님께 기도하자. 지혜와 용기와 덕을 베풀어 주십사 기도하자.

shutterstock_1388619404.jpg

회사를 나온 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내가 조금씩 신앙심이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일요일에 한번 가 예배를 드리는 정도의 형식적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매일 몇 차례나 하나님을 찾고 기도한다. 

사표를 낸 직후 여행을 할 때다. 친지가 사는 전남 해남군 청산도에 내려갔다. 7시반쯤 저녁을 일찍 먹고 칠흑 같은 밤에 홀로 산보를 나갔다. 인적도 없는 섬 길을 혼자 걸으면서 하나님께 기원했다.

“하나님,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지금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소서. 지금 제 선택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선택임을 확신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도심에서 자란 나는 불빛 한 점 없는 한밤중 이런 산길에는 익숙지 않다. 겁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날 달빛조차 없어 온통  캄캄한 밤길을 걸으면서, 파도 소리 높고 차가운 겨울바닷바람이 불어치는 해안가 절벽 벼랑끝 위에서 추위도 잊고 두려움도 잊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설교 내용 대부분이 왜 이리 내 처지와 비슷한지.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예전에도 목사님은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했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내가 절박하지 않은 상태라 남의 얘기처럼 건성으로 들었을 것이다. 종교란 역시 힘들고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어느 일요일 예배시간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계속>

더보기
주말 연재 | 오십즈음에 (30)
글쟁이가 난생 처음 방송 MC로 데뷔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비판해도 계속 강의 맡겨
대학·국정원 강의에 인터넷신문 주필까지! 정신없이 바빠진 프리랜서 생활
회사 나왔지만 얻은 게 더 많았던 한해 꿈 속 잠재의식의 변화
오피스텔에서 숙식하며 쓴 ‘한강의 기적’ 한국인의 희망과 긍정
그런 관계라면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 “자네, 부인에게 이혼당할 수 있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년전 나로 돌아가다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법 터득
5개월만에 책 한권 원고 완성됐으나... 새로운 기회가 된 '월 50만원 시간강사'
가족간 때로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효과 만점인 경우
훌륭한 음악가에서 충실한 가족쉐프로 변신 "가족은 내 인생의 기적"
가장 실직에 온 가족이 대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라도 당신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잘나갈 때 웃지 않던 내가 이젠 잘 웃는다 온 가족이 깔깔 거리며 본 <내 이름은 김삼순>
식당 아줌마한테 무심코 던진 한마디... 24시간 오피스텔에서 글쓰며 지낼 때
1년 안에 세상 뒤흔들 대작 만들겠다는 강박감 “구루마 끌더라도 독립한다”
수백만달러 수퍼마켓 잃고 자살 결심했으나.. 한번 뿐인 삶,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스스로 유배시켜서도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변화 모색 위한 참으로 많은 방법들
'터프함'도 좋지만 '처절함'도 경험하고 싶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갖는 자기 직업에 대한 회의
“원고지 장당 500원 줄테니 내 밑에서 일해보시죠” 난생처음 당해보는 甲질,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회사 나와 은둔하게 된 또 다른 이유 뻔한 동창회 모임 한 장면...그날은 달랐다
‘천국' 내집 살벌하게 만들기, 1분이면 충분 가족간 다툼...하지만 유독 서운했던 그날
시대와 불화 겪던 이문열과 밤새 폭탄주 대작 15년전 힘들어 하던 그…요즘은 어떻게 볼까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 덕분에 성공한다 조수미·안성기 인생 내면 탐구
행복하려면 내자신과 불화에서 벗어나야한다 늘 불편한 마음상태. 비단 나뿐일까?
24시간 근무, 생활용품 구매, 체육관 등록 1~2년 적자 각오하다
잠도 자고 밥도 해먹는 오피스텔 빌리다 자력 갱생을 위한 글쓰기 공간
일억 연봉자인데도 늘 각박하고 허기졌던 마음 나이 오십에도 왜 그리 술 먹었는지…
자신 비토하고 파업 주도한 노조간부 중용한 회장 “뭐 먹고 살려구…우리 돕고 살자”
퇴사한 나를 못 본 척 외면하는 지인들 서글프지만 그게 인생살이
늦잠은 커녕 매일 악몽에 새벽에 잠을 깼다 물리치료사도 놀란 내 몸의 상태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마을버스 거꾸로 타고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의 심경
회사 사표낸 후 마신 술, '대취'해 다 잃어버리다 사장께 보낸 편지
“차에서 내리란 말이야. 여기서, 지금!” 영하 10도 추위 속에 느끼는 세상 인심
"제가 왜 그 일을 맡아야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때 내 사표는 탈출구였다
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았을까?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은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