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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즈음에 (23)

식당 아줌마한테 무심코 던진 한마디...

24시간 오피스텔에서 글쓰며 지낼 때

한강 작가  202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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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책의 경우 주제, 소주제, 목차, 전개방식 등 사전기획을 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다. 나는 지난 60년간 괄목할만한 사건 30여건과 한국인의 장점 20여건 등을 대략 선별해 놓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한 꼭지당 원고지 30매 내외로 약 40꼭지로 책을 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책을 만들려면 자료수집을 해줄 보조가 필요하다.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할 내 입장에서 친정인 신문사 조사부 후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매일 아침 6시 정도에 일어났다. 7시쯤 출발하면 오피스텔 사무실까지 승용차로는 30분, 지하철로는 한시간 거리다. 나는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그만큼 운동도 되고 신문을 다 읽어볼 수 있다. 아침 8시쯤 텅 빈 사무실에 도착하면 바로 일에 들어갔다. 평생 왁자지껄한 사무실에서 서로 떠들며 농담하며 지내던 생활과는 판이한 상황이다.

‘갈 길은 멀다. 해야 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나는 오전 내내 책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읽고 아웃 라인을 만든다. 

어느 새 12시가 넘으면 나는 혼자 사무실에서 점심을 해먹는다. 바깥 직장인들이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나 혼자 쓸쓸이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구나 이 주변에는 언론사가 몰려 있어 아는 사람도 많다.

나는 미국에서도 1년간 혼자 있어 음식을 곧잘 한다. 냉장고에는 라면, 냉면, 짜장면, 스파게티같은 인스턴트 식품과 쌀, 빵, 고기, 과일, 밑반찬 등이 준비돼 있었다. 그날 입맛대로 만들면 된다. 먹을 때 와인 한 잔을 곁들일 때도 있다.

점심을 먹고서는 나는 산보 나간다. 소화를 시키고 잠시 휴식하기 위해서다. 이미 시간은 1시가 넘어 직장인들은 사무실로 들어간 뒤다. 나는 넉넉한 보도 위를 걸으면서 상념에 젖는다.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이 몰려온다. 산 너머 산이다.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과연 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불황에 백만부가 아니라 십만부 팔리는 책도 손꼽을 정도라고 하는데, 너는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리냐.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린다.

‘바로 앞에 일만 생각하라. 나머지는 신경 꺼라.’

어느 날은 혼자 밥을 해먹기가 귀찮아 오후 1시 넘어 낙원동 주변 간의식당에 들어섰다. 주인 얼굴을 보니 내가 기자 시절 잘 가던 인사동 맥주집 ‘평화 만들기’의 주인이 아닌가. 그녀도 날 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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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에 왜 여기서 점심을…"

“응, 사람 좀 돼 보려고…."

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실 그 대답은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음미해보니 나의 처지와 심경의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오후 2시쯤 다시 일을 시작하면 금방 7시가 된다. 하루 종일 전화 한통, 대화 한번 없이 지낼 때가 다반사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평생 떠들고 부산하게 사건현장을 뛰던 삶과 정반대다. 마치 수도승의 생활 같다. 나와 이해관계가 있던 대부분과 반(半)절연상태로 살아가기. 누군가 “당신은 금방 잊혀질거야"라고 말했다. 

‘그래, 잊혀져도 좋다. 사람이 돼보자.’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와 만남을 좋아하던 내가 이제는 철저히 은둔자 생활을 한다. 그런 나의 변신도 놀랍고 마음의 동요가 없는 것도 놀랍다. 

‘왜냐하면 바로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여기서 흔들리면 네 뒤로는 벼랑 밖에 없네.’

이런 배수의 진 전략 때문인가. 나는 사람도 안 만나고, 그 좋아하는 술도 안하고, 오로지 책상에 앉아 글 쓰고 책 쓰는 일에만 전념하게 됐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선택을 해야 한다. 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오늘 여기 남아 밤샘을 할 것인가. 밤샘을 택한다면 적어도 6~7시간의 노동시간을 더 벌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목표로 하는 책 출간일도 그만큼 앞당겨진다. 나는 집에 전화를 한다.

“여보, 나 오늘 여기서 일해야겠어."

저녁은 대개 근처 식당에서 먹는다. 아는 사람도 없고 북적대지도 않다. 먹고 나서는 소화시킬 겸 주변을 걷는다. 조계사 뒤로 해서 안국동 길이 단골 코스다. 다시 이런 저런 상념이 몰려온다.

'남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

도와줄 것이라고 예상되던 사람들은 뒷전인데 오히려 뜻하지 않은 이가 도와준다. 쓸데없이 누가 도와주나 여부에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말을 적게 하라.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넋두리나 변명조로 얘기하는 버릇이 있다. 당분간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되도록 전화도 하지 말라. 물론 여유와 유머 있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상책인데 지금은 심정상 그럴 상황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말을 줄여라.

남에게 아쉬운 모습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라

풀 죽은 목소리로 부탁하면 상대방은 동정보다 짜증 내지 어두운 생각을 갖게 된다. “그 친구마저도"라는 실망감을 상대방에게 주지는 말자. 그것이 결코 내게 유리하지 않다. 부탁도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득이 해야 된다면 최종순간에 하라.’  

사무실에 돌아오면 8시가 조금 넘는다. 이때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가면 보통 새벽 1~2시에 잠자리에 들게 된다. 퇴근했을 때보다 꼬박 5~6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처음에 오피스텔 잠자기가 다소 불편했다. 건물이 막 완공된 상황이라 실내 화학제품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엄동설한이라 문을 조금만 열어놓고 잘 수밖에 없는데 일어나면 머리가 띵했다. 입주도 거의 안된 상태라 큰 빌딩에서 밤샘은 적막강산 그대로였다. 

아침 6시가 되면 눈을 뜬다. 주섬주섬 일어나 운동복 차림에 근처 교동초등학교에 가서 간단한 운동을 한다. 승용차를 가져온 날에는 삼청공원에 가 한바퀴 산책을 하곤 했다.

일주일에 3~4일은 근처 헬스클럽에 가 운동을 했다. 시간은 대개 오후 5시~7시경. 저녁 약속을 하기 전 시간이다. 열심히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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