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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즈음에 (22)

1년 안에 세상 뒤흔들 대작 만들겠다는 강박감

“구루마 끌더라도 독립한다”

한강 작가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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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무실은 24시간 가동 체제다. 사무실 밖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며칠이라도 먹고 자고 씻고 일할 수 있는 전천후 체제로 만들었다. 침식에 필요한 일체가 갖춰져 있다.

사실 지금 내게 출퇴근은 사치스럽다. 일반 회사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할 경우 점심 한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일을 한다고 해도 8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먹고 잔다면 그 배가 되는 하루 15~16시간 작업도 가능하다.

2년간 어느 곳도 취직 안하고 오로지 글(프리랜서 언론인)로 승부해보겠다고 한 이상 어쩔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친만큼 단단한 각오를 가졌다. 내 책상 귀퉁이에다 이런 글귀가 적힌 쪽지를 붙여 놓았다. 

‘구루마를 끌더라도 독립한다’

구루마는 손수레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말을 굳이 써놓은 것은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살려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나는 꼭 성공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하루에도 마음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사실 마음이 바빴다. 초조했다. 2년은 너무 길다. 1년 안에 세상을 뒤흔들 대작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외로움, 불안함, 서러움, 패배감, 좌절감을 일거에 뒤집을 9회말 역전만루홈런을 치고 싶다. 그런 강박관념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책을 쓰려고 하는데 출판사들은 저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좀 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 상태다. 우선 잡지사와 계약한 ‘성공한 사람의 실패담’ 1편 스토리 원고를 밤샘 작업을 거쳐 1주일만에 완성했다.

잡지사 사람들이 노력해줘 내 원고는 장당 15,000원(사상 최고액)씩 쳐서 근 200만원 가까이 받게 됐다. 제목도 돋보이게 편집됐다. 인터뷰 대상자 섭외라든가, 외국 출장 등도 알선해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얘기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작업시간이었다. 신문사에서 조직원으로 일할 때는 몰랐지만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번 작업은 너무 시간이 길었다. 취재와 원고작성에 꼬박 10일이 걸렸다. 그래서 200만원을 벌었다. 나는 해야 될 일이 산더미 같다. 올해 안에 대작도 써야 한다. 아직 주제도 정하지 못했다. 마음은 더욱 급해지고 빨리 성공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첫 책의 주제를 ‘한강의 기적’으로 정했다. 여러 사람들과 숙의 끝에 결정했다. 해방후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은 비록 문제도 있었지만 세상이 놀랄만한 성공을 이룩했으며 이 과정에는 국민들의 희생,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성공 과정, 성공 요인, 앞으로 가야할 방향, 그리고 노력해야 할 점들을 마치 영화 보듯 재미있게, 그리고 명쾌하게 분석하고 제시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반면 현 정권은 “한국 현대사는 불의와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하고 지난 60년을 비판하고 폄하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서점에는 한국을 비방하고 한국 정부를 미제의 앞잡이로 기술한 책들로 꽉 차 있었다.

이영희가 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분단시대의 논리’의 반대선상에 있는 책을 써보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다행이 내 의견에 동조하는 출판인을 만날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박영률 사장. 그는 15년전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지식공작소)라는 책을 만들어 100만부나 팔리게 한, 출판계의 ‘신데렐라’같은 인물이다. 그가 흔쾌히 만들자고 했다.

“다만 주문사항이 있습니다. 원고는 사회면 기사처럼 드라이하게, 6하원칙에 입각해 써주세요. 여기에 작가의 의견이나 주관적 감정은 넣어주지 마세요. 그냥 사건을 보여주세요. 그래서 사건 묘사를 통해 작가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한국 현대사가 워낙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사건기사식 서술법을 요구하는 듯 했다. 그는 이 책의 성격상 원고 제작기간을 1년 정도로 생각했으나 내가 반대했다. 

“오는 8월까지 원고 완료하고 올 가을에 내도록 합시다."

출판계의 제작관행도 잘 모르는 가운데 빨리 승부를 보려는 초조한 마음의 발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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