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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의 마음 숲 산책길

늘 행복을 갈망하는데 왜 항상 불행할까?

놔와 잘못된 소통부터 고치기

 

많은 사람들은 불행의 원인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서 찾습니다. 완벽한 부모로부터 교과서적인 양육을 받을 수 있는 화목한 가정, 자기실현도 이루고 금전적인 보상까지 풍족하게 받을 수 있는 꿈의 직장, 건강하고 매력적인 신체, 주변 사람의 애정과 존경 등…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 같은 무수한 조건들은 우리를 항상 목마르고 허기지게 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행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간난아이 시절에는 더도 덜도 말고 어머니의 사랑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의 범위는 방대해지고, 점차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아직 갖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고, 그것을 갖추지 못했기에 불행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환경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산다면 우리에게 불행은 사라질까요? 

필릭 브릭먼과 도널드 캠벨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 중 누구도 쾌락의 추구를 통해서 불행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에 올라탄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얻으려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같은 자리만 맴돌 때 ‘쳇바퀴’라 표현을 쓰게 됩니다. 우리가 그 무엇을 얻어도 행복해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의 뇌는 그것이 무엇이든, 친숙해진 다음에는 금세 ‘적응’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적응’이란 쉽게 말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지금껏 실시된 수많은 ‘행복’에 관한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질수록 훨씬 더 많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결론내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쯤 되면 뇌의 ‘적응’ 현상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내 행복을 갉아먹는 원흉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것이며, 이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초기화 과정이 있어야만 다시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필연적인 적응 현상 때문에, 평생 불행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추어도 그로 인한 행복이 곧 초기화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적응 현상 때문에, 손쉽게 얻어지는 것으로 인한 행복과 어렵게 얻어지는 것으로 인한 행복의 지속성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거창한 것들만 좇다 보면, 우리는 그것을 이룰 때까지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렵게 그것을 이루어 냈다고 해도, 그로 인한 행복감이 예상한 것만큼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깨우쳐야 합니다.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여러 번의 작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적응 현상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방어 전략입니다. 또한 이미 곁에 있는 행복들을 천천히 음미하여 가급적 오래 머물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구 결과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느냐’ 보다,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감을 경험하느냐’와 더 깊은 관련성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쳇바퀴 안에서, 자신이 아직 갖지 못한 것들이 진정한 행복의 전제조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까지는 행복할 수도 없고 행복해서도 안된다는 잘못된 주문을 자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런 방식으로는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제 과감히 쳇바퀴 안에서 내려와 우리가 무시했던 사소한 행복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미 곁에 존재하는 행복들을 발견하고 음미한다면, 우리는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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