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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불쾌한 감정 현명하게 다루는 법

“참거나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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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환자의 나이, 이름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변형된 것입니다>

27세인 지영씨는 수개월 전부터 무기력증과 목 안에 덩어리가 느껴지는 증상을 겪어왔습니다. 여러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도 해봤지만 신체적으로는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지요. 그러다 한 내과의사로부터 정신과 진료를 권유 받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우울증 진단을 내리자 지영씨는 의아해했습니다. 평소 자신을 슬픔이나 우울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울함과 슬픔을 느끼는 것보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지영씨에게 더 위험한 신호로 보였습니다. 또 이비인후과 진료나 CT검사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목 안의 이물감은 다른 감정적인 어려움이 신체적으로 표현된 결과로 여겨졌지요.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뇌는 생존을 위하여 대상을 쾌(快)와 불쾌(不快)로 이분화하고 불쾌한 대상을 반사적으로 회피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것이 원시시대에는 1차적으로 생존에 도움을 주었지만, 현대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감정불능증(Alexithymia)’을 갖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것에는 본성 뿐만 아니라 환경도 한 몫 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주변 어른들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불쾌한 감정은 회피하고 참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학습하게 된 것이지요. 그 결과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 있을 때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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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통해 지영씨가 쇼핑에 몰두하는 것은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가 느껴질 때 TV를 보며 의도적으로 흐릿한 정신을 만들고, 달콤한 음식으로 슬픔을 덮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물론 이런 경험들이 지영씨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비슷한 경험 한 두가지는 떠올려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뇌를 마비시켜서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 들을 통해서, 이렇게 미뤄둔 감정들은 소멸되지 않고 더 강력해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감정을 잠시 외면할 수는 있겠지만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이 같이 유예된 감정들은 때때로 두통, 가슴 답답함, 목의 이물감과 같은 여러가지 비특이적인(우리 몸의 정상적 면역반응) 신체 증상들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안 좋은 감정을 회피하려고 할 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긍정적인 감정도 함께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정불능증(Alexithymia)’이라는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감정불능증이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감정적 각성으로 유발된 신체 감각과 실제 감정을 구별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는 선택적으로 좋은 감정만을 느끼고 안 좋은 감정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불쾌한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억누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반복되면, 우리의 뇌는 점차 자신의 모든 감정에 둔화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안정감, 즐거움, 행복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각에서도 멀어지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지요. 

감정불능증을 갖게 되면 우리의 삶은 흑백TV와 같이 단조롭고 무료해집니다. 또 자신의 감정과 멀어지게 되면서 자신과 분리된 듯한 느낌을 받고 생동감을 잃습니다. 지영씨도 그랬습니다. 제 설명을 듣고 지영씨는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더 이상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어.’ 라고 자신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또 목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질 때마다, 신체 감각 이면에 숨겨진 감정이 어떤 것일지 살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깊이 묻어두었던 자신의 슬픔과 불안에 가까워졌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감정의 파도가 왔다가 사라지자 수개월 간 막혀 있던 목 부위가 시원해졌습니다.        

안 좋은 감정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 감정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잘 떠나갈 수 있게 배웅해야 합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한 그 감정들은 한 켠에 서서 계속 우리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강렬한 감정이라고 해도 우리가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거부하지 않을 때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내면은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글ㅣ 최윤정
프로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인과 학생 등 젊은 연령층이 주로 찾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이들의 우울과 불안을 치료한다. 이별 수업, 자존감 키우는 법 등 청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며 멘토가 되었다. 행복과 자존감 문제를 다룬 책을 저술 중이며, 현재 Instagram 을 통해서도 글을 올리고 있다.
참된 치료자의 역할은 환자의 내면에 숨겨진 회복탄력성과 치유력을 함께 발굴하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치료자가 되게끔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nstagram 주소 : mondedereve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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