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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인생의 황금기가 바로 지금인 이유

“잘나갔던 그때로 돌아가면 행복해질까?”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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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약간 아쉬운 법이에요. 늘 불만스럽죠.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되고 그럼 또 다른 과거를 동경하게 될 거예요. 과거에 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대사 중에서 


비가 오는 파리의 거리, 우산도 없이 걸어 다니는 한 남자가 있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밤은 깊어가지만, 그는 어디론가 정처 없이 향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향수에 젖어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한 젊은 남자의 시간여행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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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상업 작가로 성공을 거둔 미국 출신 소설가 길 펜더는 언젠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낭만적인 예술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라 다짐한다. 그가 현재 쓰고 있는 글은 ‘과거를 파는 가게’라는 주제를 담은 소설인데, 작가로서 예술의 전성시대를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투영된 듯하다. 21세기는 먹고 마시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가 꿈꾸는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은 약혼녀 이네즈와 그녀의 부모님의 파리 출장에 동행하게 되고 그가 원하던 이상적인 세계와 만나게 된다. 파리의 예술적 정취에 빠진 길과는 달리 현실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이네즈는 쇼핑에 열을 올리고 그들은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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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이네즈가 친구들과 춤을 추고 와인 파티를 즐기는 동안 길은 파리의 거리를 혼자 걷기로 한다. 무작정 걷다 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고 그는 시계탑이 있는 건물 계단에 잠시 앉아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마치 골동품을 연상케 하는 오랜 연식의 푸조 자동차가 길 앞에 선다. 그는 이상한 끌림을 느끼며 차 위에 올라탄다. 그가 오랫동안 동경하던 파리의 전성시대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길은 그곳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쓴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를 포함하여 20세기 미국 문학의 전설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입체파 화가 피카소, 작곡가 콜 포터,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등 당대를 주름잡던 위대한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믿을 수 없는 듯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1920년대야말로 진정한 ‘황금시대(Golden Age)’라며 그 속에 평생 머무르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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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그렇게 주인공 길은 현실과 이상을 왕래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운명적인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이내 이별을 겪는다. 그리고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시대가 자신의 삶에서는 ‘골든 에이지’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여행에서 만난 운명의 여성은 길에게 있어 환상 속의 페르소나였던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주인공의 황금시대가 과거가 아닌 지금, 즉 ‘현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는 그가 겪는 사랑을 통해 주인공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 끝에 길이 찾은 것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자신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자신이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들 또한 영화 속 주인공 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와 같이 이미 지나간 시대를 동경하며 지금의 현실에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인생에서 소위 ‘잘나갔던’ 전성기를 그리워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가까운 지인 중 하나는 결혼하기 전에 찍은 본인의 사진들, 예를 들면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의 사진이나 멋진 스튜디오에서 찍은 웨딩사진들을 가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그때를 추억한다. 

그녀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이다. 주말에 공원에 가도, 경치가 좋은 곳을 방문해도 그녀는 아이들 사진만 찍을 뿐 정작 자신의 모습은 찍지 않는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거울을 보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담을 받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과거 모습과 현실의 모습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 대학을 나오고 부족함 없이 자랐는데 사회에 나오니 그저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거나 이용하는 ‘노동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오늘도 고민에 빠진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공부하고 대학 나온 게 아닌데……."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것은 좋지만 그때에 머무른 나머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근사하고 멋있었던 내가 있었다면 지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된 내가 있다. 지나간 날에만 집착한다면 현재도, 미래에도 못났고 무기력한 나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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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어딘가에 속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때로는 혼자서 차를 마실 여유를 가끔이라도 누리는 것, 혹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가 내 옆에 있다는 것, 작지만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남들이 인정할 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소소한 기쁨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이다. 

자신의 삶은 불행뿐이라며 불평하는 이들은 어쩌면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남들과 비교하고 끝없이 욕심을 부릴 때 우리는 더 가져도 덜 행복해진다. 인생에서의 황금시대는 바로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있다.

 

*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필자의 저서 《적당한 거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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