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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간난 딸을 버리고 감옥을 선택한 이유는?

원치 않는 과거가 불쑥 찾아왔을 때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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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무비

 당신의 과거가 현재의 당신을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은 적이 있는가? 혹은 현재의 안락한 삶에 과거의 누군가가 침투하여 괴로웠던 적이 있는가?

프랑스 영화 〈그 누구도 아닌〉은 한 여성이 경험하는 네 가지 기억, 네 가지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27살 주인공 르네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르네는 사랑하는 남편 다리우스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 4년째 인공수정을 시도 중이고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이다. 교사로서의 업무 이외에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상담하고 돕는 일을 자청해서 하는 그녀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할 것 같은 일상에 르네의 삶을 총체적으로 뒤흔들만한 일이 벌어진다. 그녀가 스무 살일 때 연루되었던 살인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카린 로진스키 씨 맞나요?" 

남편은 당황해하며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아내를 쳐다보지만, 르네는 순순히 경찰에게 연행되어 집을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의 조우. 6살 키키, 13살 카린, 20살 산드라, 27살 르네. 네 개의 캐릭터는 파편처럼 흩어져 있지만 결국 르네의 삶을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보여주는 입체적인 하나였다. 


주인공은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폐차장에 살면서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 두 명을 잃는 사고를 겪는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아버지는 그 후로 폭군이 된다. 밤이면 밤마다 아버지의 폭력과 횡포에 벌벌 떠는 열세 살 카린은 짙게 화장을 하고 매일 밤 클럽으로 간다. 자신을 하룻밤 재워줄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다. 너무도 앳된 얼굴에 립스틱을 덕지덕지 바른 입술과 앙상한 몸. 온몸은 구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고아나 다름없었다. 

20살 산드라로 사는 르네의 삶 또한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다. ‘양딸 구함’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우연히 만난 경마 도박을 하는 60대 남자를 알게 되고 그의 심부름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간다. 그녀는 쉴 수 있는 거처도 없었고, 떠돌이 같은 삶은 누군가에게 이용되거나 끌려가는 삶으로 이어졌다. 돈이 필요한 산드라에게 한 여자가 접근한다. 그녀의 이름은 타라. 타라는 산드라를 이용해서 거액의 돈을 횡령하고 나눠 가지기로 한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타라는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산드라는 큰돈을 가지고 경찰을 피해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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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그녀는 공부를 시작한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산드라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있다. 본격적인 ‘르네’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하고 안정된 삶. 그녀에게는 처음 경험해보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도, 자신을 도구처럼 대하던 사람들도 삶에서 사라졌다. 빼돌린 돈이었지만 그녀는 그 돈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사용했다. 

안온할 것 같았던 르네의 삶에 횡령 공범자 타라가 찾아오며 그녀는 죽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도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 직감했을 것이다. 과거는 내가 원치 않은 시점에 느닷없이 침투한다. 

임신한 몸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르네. 그리고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 남편 다리우스. 다리우스는 르네를 구출해서 다른 나라로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도주 도중 아이를 출산하게 된 르네. 말도 통하지 않는 의료진 앞에서 괴로움을 호소하며 딸을 낳는다. 탈출에도 성공했고, 그토록 원하던 아이까지 낳았다. 자신을 옆에서 지켜주는 자상한 남편까지 있지만, 르네는 무언가를 상실한 표정이다. 심지어 갓 난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도 않는다. 

“곧 올게. 약속할게. 넌 내가 책임질게. 사랑해."

르네는 딸아이를 남겨놓은 채 어딘가로 향한다. 밝은 불빛이 비치는 건물이다. 경찰서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리는 삶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지 않는다. 과거 여러 모습의 ‘나’는 현재의 ‘나’와 연장선에 있지만 같지 않다. 또한, 연속선상에 있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는 현재를 붙잡는다. 아픈 과거일수록 자신을 붙잡는 힘은 강할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과거는 현재의 삶에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온다. 그것은 현재 맺는 관계에서 반복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꿈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후의 여운은 꽤 길었다. 만약 주인공 르네가 아기에게 젖을 물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아마도 그녀는 계속해서 도망 다니며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범죄자의 딸로 부적절함을 마음에 지닌 채 살지 않았을까? 르네는 딸이 자신처럼 되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죗값을 치르더라도 떳떳한 엄마가 되길 원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삶의 선택지가 있다. 부모로부터 주어진 삶, 그리고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 부모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누군가는 부모가 만든 삶의 그늘 안에서 살아갈 테고, 또 누군가는 그러한 질긴 고리를 끊어내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며 변화하고 성장한다. 부모로부터 미분화된 내가 있고, 분화되며 발버둥 치는 내가 있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걸어가는 내가 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은 서로 연결되고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나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과 방황 속에서도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이다. 모든 ‘르네’들의 삶을 응원한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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