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어머니와 딸이 기억하는 진실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6-2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downloadfile-1.jpg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유명 배우인 엄마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와 엄마의 후광에 가려져 재능을 펼치지 못한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회고록 출간 기념을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딸의 가족들. 뤼미르는 엄마의 회고록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며 분개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좋은 엄마 노릇을 한 것처럼 쓰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진실은 원래 재미없는 거야.

내 회고록인데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잖니."

뤼미르는 자기애로 똘똘 뭉친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창 시절 자신이 하는 연극을 보러 와주지도 않고, 감정을 돌봐주기는커녕 배우로서의 자신의 삶에만 빠져있는 엄마를 보며 서운해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 대신 자신의 마음을 돌봐준 엄마의 라이벌 배우 사라에게 의지한 그녀였다.

뤼미르는 남편과 딸과 함께 엄마의 드라마 촬영장을 방문한다. 파비안느가 출연하는 작품은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드라마로, 지구에 있으면 1년 안에 죽을 수 있는 이름 모를 병에 걸린 주인공 엄마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주에 떠나 있다가 7년마다 딸을 만나러 지구에 내려온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엄마 파비안느는 극 중에서 보고 싶은 엄마를 기다리다가 늙어버린 딸로 출연한다.

downloadfile.jpg

영화는 파비안느와 뤼미르, 그리고 드라마 속 엄마와 딸을 교차로 그리며 엄마와 딸의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두 딸 모두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엄마에게 안기거나 다가갈 수 없다. 

한 엄마는 엄마 역할보다 무대 위의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더 사랑하고, 또 다른 엄마는 딸과 함께 있고 싶지만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인해 딸을 혼자 두고 우주로 떠나는 캐릭터다. 영화 속 두 딸은 언제나 엄마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엄마가 자신을 보러와 주겠지 하며 기대 반 서운함 반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와 딸. 동성이니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클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엄마는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딸이 살았으면 하며 기대를 투사하고 혹은 남편에게 받지 못한 공감과 이해를 딸에게 바라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딸이 미치지 못하면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딸도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엄마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놓는다. 예민한 딸은 다소 둔감한 엄마에게 자신을 깊이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란다. 엄마도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공감을 딸에게 해주어야 하니 엄마 노릇이 버겁다.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진 둘은 이렇듯 평생 부딪히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어쩌면 가장 가깝지만,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가 엄마와 딸이 아닌가 싶다. 상담실을 찾는 여성 내담자들은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호소한다. 짜증, 서운함, 안타까움, 애정, 미움, 서러움, 연민 등 혼합된 감정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그러한 감정들이 사라지고 애틋한 마음만 남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육아관이 서로 맞지 않아서, 서로의 취향이 달라서, 대화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들은 여전히 싸우고 다툰다. 누군가는 그런 싸움을 피하고자 관계를 멀리하거나 단절하기도 한다.

“기억은 믿을 게 못 돼."

영화 속 주인공인 파비안느가 한 말이다. 서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기억하는 것은 각기 다르다. 엄마는 딸에게 잘해주었던 것을, 딸은 엄마가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던 경험, 혹은 상처 주었던 일을 기억한다. 누구의 기억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각자가 크게 느끼는 부분은 더욱 크게, 작게 느끼고 싶은 부분은 더욱 작게 마음속에서 편집한다.

올해로 나는 7년 차 엄마가 되었다. 육아를 경험해보니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을지, 외로웠을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내가 청소년기에 길을 잃고 방황했을 때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주었더라면, 잘하든 못하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었더라면 엄마를 오랜 시간 등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큼 예민한 성향을 타고난 내 아이 또한, 엄마인 나에게 서운함을 품은 채 자랄 것이다. 내가 사랑을 주었든, 덜 주었든 아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아이의 것이니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상담실에 나와 밀린 업무를 하는 중이다. ‘엄마로서의 나’도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일 또한 내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엄마가 되고 난 후에 느끼는 것은 엄마도 보통의 사람이고, 살아갈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딸이 바라보는 엄마의 회고록은 진실이 아닐지라도 엄마 파비안느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살아가게끔 만든 동력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 서로가 기억하는 진실은 언제나 다르다. 어쩌면 누군가의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궁금함의 여백을 남겨놓는 일이 아닐까 싶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더보기
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공부 잘하고 착하게 자란 사람의 역설 왜 늘 칭찬 못받으면 노심초사하죠?
어머니와 딸이 기억하는 진실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을 알라. 왜?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눈치 안보고 나답게 솔직하게…
코로나 번아웃 시대 자영업자 워킹맘의 고민 “신경과민, 불면증으로 쓰러질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 하루 몇차례 ‘피카’ 타임 갖는 이유? 쉼-조화-균형 위한 ‘위대한 멈춤’
혹시 당신도 경희씨 같은 사람은 아닌가요? ‘착한 아이’ 교육의 나쁜 선례
〈부부의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5가지 교훈 결혼 생활이 외로울 때, 배우자 문제가 아니라 내 탓?
“손수건은 빌려주기 위해 갖고 다니는 거야.” 영화 〈인턴〉에서 벤의 대사
아이를 더 키울 수 있나요? "NO" 육아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내 모습 때문에?
고아에다 전신마비 알콜 중독자의 희망 찾기 남에 대한 용서보다 나에 대한 연민부터
가장 매혹적인 이는 불륜녀가 아니라 새로운 ‘나’다 〈부부의 세계〉에서 바람피우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
내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다른 집 아이라면?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을 기억한다
평범한 은행원 주부의 10억 횡령 사건 실화 평온한 삶 대신 쾌락을 찾는 이유는?
우리 부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융 심리학으로 본 〈부부의 세계〉
여행갈 때 짐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 이유 짐을 줄일수록 인생의 짐도 가벼워진다
인간은 불안할 때 혐오할 대상을 찾는다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사회적 연대’ 갖기
당신이 진짜 힘들때 지켜줄 버팀목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은 '철학책'에서 찾았다
코로나 시대 '마음의 면역력’ 키우기 자기통제감 찾는 7가지Tip
도시락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배달되면서 벌어진 일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로 이끌 때도 있습니다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된 많은 사람들 우린 서로 얼마큼 알고 있나
행복은 특급호텔 뷔페 식사권이 아닙니다

진행중인 시리즈 more

함영준의 마음 디톡스
인생 2막 잘살기
김휘열의 우리동네 주치의
약국에서 온 편지
김혜인의 놀멍쉬멍
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김은미의 라이프코칭
신기한 음식사전
오십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