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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은 빌려주기 위해 갖고 다니는 거야.”

영화 〈인턴〉에서 벤의 대사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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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는 등불이 되어주는 ‘좋은 어른’이 있는가? 영화 〈인턴〉을 보다 보면, 삶이 버겁고 힘들 때 옆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주인공인 줄스는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기업으로 회사를 키운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사무실에서도 자전거를 타며 빈틈없이 체력관리를 하고, 야근하는 직원을 챙기고, 고객을 위해 박스 포장까지 직접 하는 열정적인 서른 살의 CEO 줄스에게도 삶의 위기가 다가온다. 

사업을 운영해본 경험이 적은 탓에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결국 주변인들은 그녀에게 전문적인 경영 노하우를 가진 외부 CEO를 영입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힘들게 일군 회사를 외부에서 스카웃한 CEO에게 넘겨주고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녀. 

그런 그녀 앞에 구세주가 등장한다. 줄스의 회사에 입사한 70세 인턴 벤. 배우자와 사별하고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그가 삶의 빈 구석을 채우고자 여러 기회를 찾아보던 중 줄스의 회사에서 시니어 인턴을 채용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지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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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40년 넘게 일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벤은 처음에는 달라진 업무 방식과 환경에 다소 어색해하지만 이내 그가 가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업무에 적응한다. 처음에 줄스는 나이 든 노인이 무엇을 할 줄 알겠느냐는 표정으로 그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무시한다. 

벤은 줄스의 직속 비서로 배정받아 그녀를 보좌하기 시작한다. 운전은 물론이고 바쁜 그녀를 대신해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등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준다. 줄스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데도 얕보거나 섣부르게 조언하려 하지 않고 그녀를 존중하며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만성 수면 장애를 겪는 줄스는 어느 순간부터 벤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타면 아이처럼 곤히 잠든다. 끊임없는 회의와 직원관리 등 CEO의 책임과 임무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는 그녀였다. 그녀에게는 마음이 쉴 곳이 필요했다. 

벤은 줄스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지지와 따뜻한 공감의 눈빛을 건넨다. 아마도 그 눈빛에 담긴 메시지는 이럴 것이다. 충분히 힘든 마음일 테고, 하나씩 함께 해결해나가면 된다고. 

사회초년생 혹은 사업을 막 시작한 젊은 사업가에게 있어 세상은 두렵고 낯선 곳이다. 게다가 영화 속 주인공 줄스처럼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사람이라면 더더욱 주변의 기대와 무거워진 책임감에 버거움을 느낄 것이다. 오랜 경륜과 지혜로 물심양면 자신을 돕는 벤을 보며 그녀는 마침내 마음을 열고 그에게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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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나 스승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들 또한 생업을 꾸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의지하고 마음을 털어놓기는 어렵다. 나 또한 상담의 길을 가며 배움을 나눠주신 훌륭한 교수님과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이 있지만, 각자 삶이 바쁘고 과업들이 많으니 자주 얼굴을 보거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삶이 잘 풀리지 않고 쳇바퀴 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 찾아가서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 존재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성공도, 좌절도 겪어보았을 것이다. 나에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우선은 들어주려고 할 것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 나의 상황과 힘듦을 알아주는 눈빛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언제나 벤과 같은 ‘좋은 어른’을 동경하고 그런 사람이 나타나 주길 기대한다. 이상화된 부모를 갈망하고 자신을 잘 비춰줄 거울 같은 존재를 찾는 것처럼. 좋은 어른 혹은 좋은 스승을 생전에 만날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에 아는 것이 부족하거나 마음의 그릇이 크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삶에서 얻은 경험은 어떤 것이든 귀하며 가치가 있다. 

‘라떼는 말이야’(꼰대의 행동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아닌 ‘나 때는 그랬지만 너는 또 다를 수 있겠다’라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아랫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어차피 말해봤자 이해도 못 할 텐데’하는 체념에서다. 

좋은 어른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다. 영화 속 벤처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존중 어린 태도로 대할 때 꼭 잠겨있던 상대의 마음이 열리고 서로의 관계는 눈 녹듯 서서히 풀린다. 

누군가가 나를 통해 ‘좋은 어른’을 경험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배움을 나눠줄 때 오히려 더 큰 배움을 얻기도 한다. 좋은 어른이 되어가며 누구보다 큰 수혜를 얻는 사람은 상대가 아닌 우리 자신이다.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빌려주기 위해서야."

_영화 〈인턴〉에 나오는 벤의 대사 중에서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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