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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도시락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배달되면서 벌어진 일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로 이끌 때도 있습니다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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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점심 식사 문화가 있다. 집에서 아내가 손수 만든 도시락을 ‘디바왈라’라는 배달원이 집집마다 수거해서 남편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배달해주는 일이 그것이다. 인도 영화 <런치박스>의 주인공 일라는 퇴근해서 자신의 얼굴은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집에 들어와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남편에게 서운하다. 그녀는 윗집에 사는 이모로부터 특별한 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아 요리를 시작한다. 소원해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이다. 

일라는 이모가 알려준 조리법대로 정성껏 만든 요리를 4단 도시락통에 먹음직스럽게 담아 ‘디바왈라(배달원)’에게 전달한다. 일라의 도시락은 디바왈라의 빠른 걸음과 뭄바이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뚫고 주인에게 전달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반나절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도시락이 그녀의 남편에게 가지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 ‘사잔’에게 전달된 것이다. 생기 없는 삶을 사는 두 남녀, 일라와 사잔은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도시락 속 비밀편지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를 지켜보며 속앓이하는 일라와, 정년 퇴임을 앞둔 중년의 회사원 사잔의 지루하다 못해 무기력한 일상은 잘못 배달된 도시락으로 인해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주기도 해요."

 

사잔의 직장 후임인 셰이크가 한 말이다.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길을 잃고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 우연히 ‘인생 식당’을 발견하기도 하고, 대기업 입사에 낙방해서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성장의 발판이 되었던 경험, 혹은 잘못된 식습관과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면서 평소 잘 돌보지 않았던 내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일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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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소에는 삶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문을 두드린다. 그들 중에는 과도한 업무에 치여 몸과 마음이 소진된 40대 직장인도 있고, 인간관계가 고민인 30대 주부도 있다. 그들은 대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정서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들은 탄탄대로를 신나게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고장 난 자동차에 몸을 실은 채 목적지도 없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나만의 운전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떤 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 분노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내 분노는 우울로 변한다. 우울증은 타인을 향해 있던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되돌아와 스스로를 공격하는 메커니즘을 가진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저자 파커 J.파머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리쳐 부르고 어깨를 두드리고 돌을 던져도 소용없자 인생은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핵폭탄을 터뜨렸다. 그것은 나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를 돌려세워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라고 묻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었다.

 

우울증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것은 지금 나에게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내가 ‘나’로 살고 있지 않음을 말하기도 한다. 우울증은 원래의 나로 되돌아오라는 무의식적 메시지이며,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내면의 참기 힘든 고통이지만 그로 인해 혼자서 끙끙 앓던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상실은 새로운 삶의 얻음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일라와 사잔 모두 외로움과 고립감, 무의미감에 젖은 채 일상을 살고 있었지만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통해 결국 ‘잃어버린 나’를 만난 것처럼 ‘잘못 탄 기차’는 때론 우리를 삶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 목적지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무척 다른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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