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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된 많은 사람들

우린 서로 얼마큼 알고 있나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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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개봉했던 영화 <벌새>를 보다가 극 중에서 한문 선생님으로 나오는 영지가 제자인 은희에게 알려주는 한자성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능히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명심보감의 ‘교우’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지가 칠판에 차분히 써 내려간 글자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문득 내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는 일 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최근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안부를 묻지 않은 이들도 있다. 주소록에 있는 사람 중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가족, 친구 혹은 지인들은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까? 나 또한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명심보감의 글처럼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마음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만약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그런 사람이 둘 셋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전생에 엄청나게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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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우리는 SNS상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타인과 소통을 한다. 어떤 때는 현실에서의 인간관계가 아닌 사이버상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기에 서로 너무 깊숙이 알려 하지도,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만큼의 정보만 공유하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각자의 취향이나 견해가 맞지 않으면 기꺼이 ‘차단’ 혹은 ‘언팔(unfollow)’을 클릭한다. 단 몇 초 만에 그와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이다. 깡통에 든 인스턴트 음식을 먹다가 입에 맞지 않으면 뚜껑을 덮고 냅다 버리듯 인간관계 또한 쉽게 취하고 쉽게 내버려진다. 

명심보감이 고려 시대에 쓰인 것을 보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에 빗대어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이 열린다. 열 마디 말을 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한마디 말을 잘 듣는 일이다. 때로는 ‘당신이 충분히 그럴 만 하다’라며 수긍하는 눈빛이 어떤 언어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타인과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지만 늘 외롭다면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해서일 것이다. 바쁜 현실 속에서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공감이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삶에서 그보다 더 서둘러 해야 할 과업은 없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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