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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행복은 특급호텔 뷔페 식사권이 아닙니다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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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으로 걱정이 많은 동물이다. 그들은 매일 어떻게 하면 잘 살지를 고민한다. 부를 짧은 시간에 축적해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방법에 골몰하고, 정작 아이는 관심 없는데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한다. 20년 후의 윤택한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즐거움을 뒤로 미룬다. 행복을 차곡차곡 통장에 적립해두는 것이다. 적립해둔 행복이 20년 뒤에 다달이 나에게 연금처럼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이 있다. 백 세 가까이 산 어느 유명 철학 교수가 쓴 책이다. 백 년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사십 년을 살아보니, 행복은 ‘적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행복이 무엇을 완성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행복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존재해야 했고, 그것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거나 스스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사십 년을 살아보니’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즐거움이었다.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의 기쁨은 생각보다 그것을 누리는 시간이 짧았다. 첫 책을 출간했을 때가 2017년 봄이었다. 서점에 가보면 신간 코너에 번듯이 내 책이 진열되어 있었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책과 내 이름이 나란히 떴다. 주변의 축하세례를 받으며 어깨가 으쓱해지고 한편으로는 꿈꿔왔던 이상이 현실로 이루어져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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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행복감은 그리 여운이 길지 않았다. 오히려 책이 출간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책을 쓰면서 느꼈던 행복감과 만족감이 컸다. 물론 그때의 행복감에는 힘듦과 고통도 포함된다. 무언가를 쓰는 일은 어렵고 서툴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 위에 하나씩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글을 쓰는 동안은 마치 시공간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아마도 몰입경험일 것이다)이 들기도 했다. 

지나온 날 중에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회상해보면 무언가에 천천히 머무르고 느끼고 경험할 때였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꼭 안아줄 때, 남편과 소소한 말다툼 뒤에 ‘미안해’ 하고 화해하며 배시시 웃을 때,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올림픽대로를 질주할 때 작은 행복을 느꼈다. 어찌 보면 소소하고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인데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쁨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문득 배신감이 든다. 행복은 대단한 것이어서 나중에 한방에 누리려고 아껴두었는데 이렇게 일상적인 사건들이라니. 마치 평소에는 잘 갈 수 없는 특급호텔 뷔페 식사권을 고이 아껴두고 있다가 사용 기한이 만료되어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느끼는 허무함이랄까. 행복은 호텔 뷔페 식사권처럼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었고, 내가 ‘무엇’이 되었을 때 느끼는 으쓱함도 아니었다. 행복은 그저 고소한 우유와 에스프레소와 적당한 고운 거품이 어우러진 카페라테를 한 모금 머금는 ‘지금 이 순간’ 이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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