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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잘살기 (43)

당신이 죽었을 때 진정 슬퍼해줄 가족은?

가정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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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가족들과 공감하는 아빠·엄마이고 싶고 존경받는 집안의 어른을 원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축적된 경험, 지식, 사랑, 가진 것을 나눠주고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보살핌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21세기 지금 이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네 가정과 가족의 모습은 지난 수 십년간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리의 전통 가정은 대가족제도하에 남성과 서열 위주였다. 먹고 살기가 힘든 시대였지만 집안의 기강과 가장의 권위는 있었다. 그러나 개인과 여자는 없고 희생이 강요됐다.

지금 가정은 어떤가. 핵가족 제도하에 집안 주도권이 급격하게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 중이며 방임 위주다. 구성원 개인의 입지가 넓어진 반면 집안의 기강과 권위는 떨어졌다. 가족의 유대감보다 각자 살아가는 분위기다. 

이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여러 방식으로  혼자 사는 삶도 많다. 점점 어른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가족간의 사랑도 제한적이고 계산적인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당신은 집안에서 어떤 위치인가? 가정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와 비중은 어떤가? 당신의 든든한 울타리요 안식처인가? 당신과 가족은 끈끈한 사랑과 관심으로 엮어져 있는가?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노후생활에 든든한 지킴이가 돼 줄 수 있을까?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신의 가족이 진심으로 슬퍼해 줄 것인가?

지금 60대 이상 한국의 남성들은 보통 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20대 중후반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40-50대까지 생활전선에서 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가장 일반적인 삶의 패턴이었다. 

이때 사실상 생활적·정신적 괴리가 온다. 늘 바깥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하루 24시간 집 안에 머물며 ‘진짜 가족’이 됨으로써 생기는 부조화와 갈등. 결코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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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맞을 매 미리 맞자! 이런 생각 하에서 나는 우리 나이 오십에 다니던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찾아 나섰다. 홀로 삶을 개척하겠다며 사무실을 하나 얻고 지내던 때 가족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부터 저녁 시간이 자유스러워졌다. 전에는 수첩에 빼곡이 잡혀 있던 저녁 일정이 이제는 텅 비어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시간만 생기면 친구들과 만나 한 잔 하곤 했는데 이제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한가롭게 주거니 받거니 하기에는 ‘제2의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할 일이 많았다. 술자리가 줄어드니 당연히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경우가 많게 됐다.

집으로 퇴근할 경우에는 대략 저녁 7~8시에 사무실을 나온다. 집에 돌아오는 시각은 보통 8~9시.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가끔은 대학생 아들, 중학생 딸이 함께 있을 때도 있다. 아이들은 외국에서 함께 살던 4년 반을 제외하고는 아빠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에 들어온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함께 TV를 본다.

우리 가족은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다. 드라마에 익숙지 않던 나는 처음에는 덤덤하게 보다가 어느덧 아이들과 똑같이 깔깔 거리거나 마음을 조이곤 했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드라마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꼈다. 한창 인기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교감을 했고 화해를 했다.

나는 사실 웃음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둔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내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면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할까. 어쩌면 나는 웃을 일이 없어서 웃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웃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감이랄까. 그런 점에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나에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돌이켜보니 성인이 된 후 난 웃음이 매우 적어졌다. 소위 잘나가던 시절, 안정적이던 시절에도 별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삶에 욕망이 많은 만큼 불만도 많았다. 그러니 웃을 일도 없었고 행복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안온했던 시절. 그 시절과 단절을 고하면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즐거워지려고 시도하는 것은 긍정적 변화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서서히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며 깔깔거리다 보면 내 마음 속 시름은 잠시 먼발치로 옮겨간다. 웃음의 여운이라고 할까, 연속성이라고 할까, 의식적으로 웃다 보면 마음도 좀 가벼워지고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둔 이후 가족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사실 결혼생활 내내 가정에 어려운 일이나 큰 긴장 없이 모든 것이 대체로 순탄했다. 아이들은 걱정 없이 잘 컸고, 가장인 나도 그런대로 회사에서 잘나가고 있었고, 아내는 살림살이며 자녀교육을 잘 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이 직장에 사표를 던진 후 모두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실감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불안한 남편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했다. 내가 연초 사표를 들고 회사로 향하던 시간,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무슨 일이라도 당신 결정에 우리는 따르겠습니다’

아내로서는 나의 선택을 전혀 원치 않았겠지만 나에게 위축되지 말고 힘내라며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렇다. 나는 결코 좋은 남편감은 못되었지만 아내는 나를 내조하며 묵묵히 할 일을 다했다. 지난 20년을 살아오면서 내게 불만을 품은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자기 소임에 충실했고, 내가 해준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랑과 배려를 내게 쏟아준 고마운 이였다.

퇴사 이후 아내는 간혹 불만을 피력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스스로 마음 속에 있는 여러 불만과 불안을 조용히 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조심스레 말했다.

“나도 뭔가 해야겠어. 당신이 주는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 유지가 안되니 작은 가게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어."

대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돈을 많이 쓸 시기인데도 아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집안 상황을 장남으로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학비는 아니더라도 용돈은 제 손으로 벌어 쓰겠다는 생각인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중3 딸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 또래면 대부분 이미 휴대폰을 갖고 있을텐데  사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유행하는 멋진 액세서리, 가방, 구두, 옷차림을 원할 텐데도 엄마에게 조르는 일이 없었다.  

우리 가정은 각자 나름의 위기에 대처하고 있었다. 두 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앞으로 더 안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도 동요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마흔 세번째 기억하기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신의 가족이 진심으로 슬퍼해 줄 것인가?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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