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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잘살기 (16)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딸 스테파니 공주에게 해준 말

“남자들은 너보다 ‘공주’를 더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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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기억나는 뒷모습은 어떤 것인가? 누구의, 어떤 모습인가? 감히 말하건대, 아름다운 뒷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의 뒷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기주의자나, 욕심쟁이는 상대방의 뒷모습을 쳐다볼 여유나 이유가 없다.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과 결혼하게 된 데 대해 말한 적이 있다. 

“1950년 8월 하순 맞선 보던 날 군화를 벗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써는 남을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남을 속이지 못하는 법이예요. 뒷모습은 정직하거든요. 그 후 몇 번 만나보니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뒷모습이 생각난다고 고백한다. 어렸을 적 넉넉하고 듬직한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생을 헤쳐 나가는  의지와 힘을 배웠고, 가냘프고 연약한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생을 아우르는 사랑과 헌신을 배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배우고 자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거의 모른다.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를 여의였기 때문에 아예 기억이 없으며, 어머니는 이후 줄곧 떨어져 살았다. 

대신 나를 키워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은 기억하고 있다. 노쇠하고 약한 모습….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내 마음 속에는 늘 불안, 죽음, 고독 같은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고 살았다. 

내가 왜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마음이 불안했고, 힘들어 했던 이유는 훗날 이해하게 된다. 

젊은 시절, 연애를 해도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헤어지는 것도 내가 먼저하고, 마음이 힘들어도 씩씩한 척하며 먼저 뒤돌아 갔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내 자신이 싫기도 했지만, 그것이 살아가면서 나를 지탱하고 상처를 덜 받으려는 나름의 생존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한참 나중에 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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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넘어서까지, 나의 생존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앞모습은 늘 행복하고 밝게 보이려고 애썼다. 내 주위에 친구도 많아 결코 외롭지 않았고, 어떤 어려움도 정면 돌파할 수 있다며 강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작 나의 뒷모습은 늘 불안하고, 힘들고, 고독하고, 약했다.

이 양면성의 괴리가 사춘기 시절부터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내 자아는 더 이상 성숙되지 못하고 인격은 둘쭉날쭉 했다. 영어로 ‘pretend to be(…인 척하다)’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혼자 개척하는 삶으로 뛰어들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어떡하면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아픔도 겪고 고생도 하면서 나는 자신과 조금씩 친해져 갔다. 어느 정도 마음 가는 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는 게 덜 두렵게 됐다. 'pretend to be…’ 하고 싶지 않으려면 내면의 울퉁불퉁함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맞다. 사람의 앞면과 뒷면이 다른 것을 비상하게 알아차린다. 다만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인격, 품성, 캐릭터(character)…. 이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더 가깝다. 꾸밀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앞모습만 중요시한다. 허울, 체면, 겉치레, 성형수술(앞모습 경쟁)이 넘친다.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딴 생각하는 게 지금 세태다.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모두들 앞모습만 신경 쓰고 뒷모습은  방치했기 때문이다. 앞모습은 멀쩡하나 뒷모습은 흔들리고 불안하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사람이 자살하거나 급사하는 이유도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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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세계를 뒤흔든 영화배우이자 후에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1929~1982)는 1982년 자동차 사고로 숨지기 직전,  동승했던 둘째딸 스테파니 공주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열일곱살난 스테파니는 한창 남자 친구 사귀느라 바쁜 중이었다.

“남자들은 스테파니보다 공주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뒷모습보다 앞모습에 좌우되는 인간의 속성을 일깨워주는 충고였다.

젊었을 적 우리도 각자 자신의 앞모습을 가꾸는 데 바빴다. 학력, 체력, 용모, 성격, 지식, 부, 경쟁, 지위, 명예, 권력 등등…. 그러나 이제 앞모습의 경쟁은 대충 판가름 났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우리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가꾸는 데 신경써야 한다.  겸손, 배려, 사랑, 인내, 용기, 평온, 행복 등등…    

뒷 모습은 그 사람의 내면과 마음을 ‘솔직하게’ 반영한다. 꾸미거나 감출 수가 없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내면을 갈고 닦을 수 밖에 없다.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다. 
뒷 모습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 


열여섯번째 기억하기

앞모습은 꾸밀 수 있어도 뒷모습은 꾸밀 수 없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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