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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잘 살기 (14)

피천득의 첫사랑 ‘아사코’ 기억하세요?

추억을 현실에 끌어들이지 마세요

 

첫사랑하면 피천득(1910~2007) 선생의 ‘아사코’가 떠오른다. 학창 시절 피천득 선생의 에세이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 그 분이 쓴 주옥같은 수필 중에서 ‘내 딸 서영이’와 ‘인연’은 지금도 읽어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저릿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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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그가 17살 때 일본의 한 교육가 집에서 유숙하며 알게 된 그 집 어린 딸 아사코. 초등학생 소녀인 아사코와의 우정과 애뜻함이 시간이 흘러 십여년 뒤 아사코가 대학생이 된 뒤 한 차례 재회가 있었고, 다시 또 그만큼 세월이 흐른 뒤 한번 더 만나게 된다. 그러나 우정에서 발전된 애뜻한 사랑의 감정은  세월과 환경의 변화로 점점 퇴색해 간다.  

피천득은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풍부한 감성과 수려한 필치로 스토리를 재구성, ‘인연’이란 이름으로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인연’에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첫사랑은 왜 그렇게 기억에 남을까?

많은 이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인생의 여명기에 일어난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마냥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을 심리학적으로는 이렇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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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rgarnik)이 192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지낼 때 자주 가던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의 웨이터는 종이에 적는 것도 아닌데 여러 손님의 주문을 항상 정확하게 기억하고 서빙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바쁜 와중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웨이터를 신기하게 여겨, 하루는 계산을 마친 뒤 물었다.

“미안하지만 아까 우리 일행이 뭘 먹었는지 다시 한번 말해주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웨이터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계산이 끝난 마당에 그걸 왜 기억하죠?"

놀랍게도 웨이터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이가르닉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고  몇분 안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과제들을 15~22개 정도 나누어 주고 풀게 했다. 단 A그룹의 경우 그냥 풀게 놔두고, B그룹의 경우는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미완성인 채로 놔두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게 했다.

모든 과제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방금 풀게 했던 과제의 주제를 물어보았다. 

 

미완성인 채로 다음 문제를 풀게 했던 B그룹의 학생들(68%)이 A그룹(32%)보다 두배 이상 더 많이 기억해 냈다. 

이 실험 결과는 이처럼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되거나 미련을 갖게 돼 결과적으로 더 오랫 동안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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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완성되지 못한 일은 오래 기억에 남고, 이미 완성된 일에 대해선 기억이 쉽게 사라지는 심리적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c Effect)’라고 부른다. 이뤄지지 못한 첫 사랑이 전형적인 자이가르닉 효과의 표본이다.

‘완성되지 않은 일일수록 기억에 남는다.’

이는 곧 사람들은 이뤄지지 않은 일에 미련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사람은 ‘피크엔드 법칙’에 따라 과거 절정과 마지막의 기억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 경험보다 기억의 증폭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 사랑을 포함, 과거 아름다운 추억에 대해서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인식의 착시(錯視) 현상이다. 

나도 10대때 좋아했던 첫 사랑이 있었다. 50대가 돼서 우연히 일하는 곳을 알게 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동네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는 개업의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피천득이 아사코와의 마지막 만남을 후회하듯이…. 나의 그녀에 대한 추억은 40~50년전에 정지된 상태에서 그 이후는 온갖 상상력이 동원돼 부풀려져 재구성 된 것이다. 

인생 후반기는 전반기보다 마음 속 보물을 더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보물들의 관리가 중요하다. 그 보물 관리는 들국화 전인권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의 노래가사에 나와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열네번째 기억하기

추억을 현실에 끌어들이지 말라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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