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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잘 살기②

사람은 처음보다 마지막 기억에 좌우된다

"과거도 컴퓨터 파일 덮듯 바꿀 수 있다면 하시겠습니까?"

함영준 마음건강길 대표  |  편집 김혜인 기자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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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대신 기억해주고 처리해주는 '스마트 시대'에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취약해졌다. 게다가 대개 나이 마흔을 넘어가면서부터 기억력도 ‘나이 값’을 한다. 10~20대 시절에는 1년 전 시시콜콜한 일도 다 꿰고 있어 도리어  귀찮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제 한 일, 내일 약속도 가물가물해 수첩을 꺼내 봐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허름한 기억력이라도 우리 인생을 굽이굽이 돌이켜 보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좋은 의미나 나쁜 의미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인물들이 그렇다. 더구나 그것의 마지막 모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은 지금도 시간대별로 복기(復棋)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는 아스라이 먼 옛날의 추억처럼 회상되는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풍경도 선명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입학식보다 졸업식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군대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입대할 때 암담하고 두려운 기억도 생생하지만 제대할 때 그 홀가분함과 즐거움은 결코 잊지 못한다. 그런데 군대 생활 전체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그것은 대부분 제대할 때 느낌에 크게 좌우된다. 아무리 중간에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전역할 즈음에 군 생활이 좋았다면 대체로  좋은 기억을 갖게 되며, 반대로 힘들었다면 평생 안좋은 기억이 더 많을 수 있다. 

사회 생활은 또 어떤가.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 기억도 선명하지만 퇴직하던 날은 결코 잊지 못한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청춘을 불사른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처럼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극적인 사건과 함께, 특히 마지막 모습을 많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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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간의 인지 능력을 미 프린스턴대의 대니얼 카너먼(Danial Kahneman) 명예교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①찬물에 손 담그기 실험(Cold-Hand Situation)

- A실험: 60초간 14℃되는 찬물에 손을 담갔다가 꺼낸다

- B실험: 60초는 14℃에, 이후 30초간은 약간 덜 차가운(14℃에서 15℃로 변하는) 물에 담갔다가 꺼낸다.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실험을 시차를 두고 실시한 뒤 어떤 실험을 보다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80% 가까이 B를 택했다. 시간적으로는 30초 더 오래 찬물에 있지만 마지막 수온이 1℃ 높아 상대적으로 덜 차가왔다는 긍정적 기억이 B를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카너먼 교수는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인식은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로 이뤄지고 있는데, 기억자아의 힘이 훨씬 우월하며, 기억 중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면 마취 없이 치질 환자들의 항문으로 검사기기를 투입하는 방법을 통해  ’대장내시경의 체감고통 연구‘를 했다. 


②대장내시경의 체감고통 실험

- A실험: 8분간 항문을 통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마지막에 급히 기기를 뺐다.  

- B실험: 24분간 내시경 검사가 진행됐는데 마지막에 기기를 살살 뺐다. 


통상적으로 A실험 참가자보다 검사시간이 세배나 긴 B실험 참가자가 더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A실험 참가자들의 고통 호소가 더 컸다. 

고통의 기억이 심하다고 주장한 측은 검사 시간이 길고 고통 총량이 많은 B실험 참가자들이 아니라, 검사 마지막에 기기를 급히 빼는 바람에 고통 정도가 높았던 A실험 환자들이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환자의 인식은 검사 중간에 아픔이 작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아픔을 크게 느꼈다면 검사 전체가 ‘부정적’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은  ‘경험 따로, 기억 따로’로 재구성된다. 이것이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다.

그는 이를 ‘피크 엔드 법칙’(peak-end rule·절정과 종결의 법칙)’이란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어떤 경험에 관련된 인식이나 평가는, 실제 경험의 총량이나 시간의 길이와 관계없이, 절정의 순간과 끝날 때의 기억(느낌)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수리적으로 계산하자면 절정과 마지막 순간의 강도의 평균치이다.    

카너먼 교수는 이처럼 인간의 의사결정은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준합리적 경제이론’을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켜 개척한 공로로 지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피크 엔드(절정과 종결) 법칙’은 우리 인생의 전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도 실제 겪은 경험의 총량이 아니라 절정과 종결시점의 기억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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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과정을 겪어도 마지막 순간이 괜찮으면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게 되며, 반대로 즐거운 과정을 겪어도 마지막이 나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나아가 인생은 끝이 중요하다.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자는 말이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중국의 고전 ‘채근담’에 “간인지간후반절(看人只看後半截)"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려거든 인생의 후반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서양 속담에는 ‘최후에 웃는 자가 가장 멋지게 웃는 자다(He who laughs best who laughs last)’란 말이 있다. 

흔히들 과거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바꿀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과거도 바꿀 수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노력을 기울여 내 미래를 승리한 삶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내 과거도 승리한 삶이 된다. 마치 컴퓨터에서 새 파일로 기존 파일을 덮어 버리듯이 말이다. 


두 번째 기억하기

인간의 행-불행은 실제 총량보다 마지막 기억에 좌우된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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