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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예의 책 읽기

강상중 교수 에세이 '마음의 힘'

모라토리움을 용인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

명지예 기자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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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 강상중 교수가 마음에 대해 쓴 세 번째 에세이다. 이전에 집필한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통해 저자는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들을 잃은 후 힘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왔다. 그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그가 철저한 고민으로 얻은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책은 소설과 에세이가 번갈아 나오도록 구성돼 있다. 소설은 약 100년 전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두 주인공이 이야기가 끝난 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저자가 상상해서 쓴 후일담 소설이다. 에세이에서는 저자가 마음마의 산』을 썼던 당시 사람들이 전쟁과 산업화로 마음을 잃어버리던시대적 상황을 통해 현 시대를 통찰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우리 마음이 고통스러운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첫째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인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획일적인 가치관이 퍼졌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둘째로 사람들 간의 연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방어하느라 쉽게 도움의 손을 내밀지 못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버린다

마지막으로,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줄어든 선택지 안에서 목표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대 상황과 개인의 마음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개인은 시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대에 모순이 있으면 개인의 정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마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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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교수는 해결 방안의 핵심으로 모라토리엄’, 즉 유예 기간을 꼽는다.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나, 이것저것 도전하느라 모험을 하더라도 그 시기를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 시대의 시간은 분, 초 단위로 숨 가쁘게 돌아간다. 덕분에 우리는 24시간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만 한다. 그는 이 상황을 비무장지대 없는 전쟁터라고 비유한다. 각박한 전쟁터가 우리에게 강렬한 스트레스를 준다.

이 대목을 읽으며 서양의 중세 시대 축제 중 카니발이 떠올랐다. 카니발은 부활절 40일 전부터 고기를 끊고 금욕 생활을 하기 전, 3~7일 동안 마음껏 먹고 즐기며 일탈 생활을 용인하는 기간이었다. 당시 유럽 세계는 신 중심이어서 인간은 모든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대가 수 세기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카니발 덕분일지도 모른다. 카니발이 '숨 쉴 틈'이 되어줌으로써 개인이 시대의 모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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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지적했듯 지금 이 시대에는 모라토리엄이 용납되지 않는다. 대학-직장-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쉴 틈 없는 경로는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머뭇거리거나 방황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낙인 찍는다. 인생의 한 시기라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해보는 시간이 절실하다. 풍선도 쉬어가며 불어야지, 쉬지 않고 불다보면 부는 사람도 지치고 풍선도 터지기 마련이다.

마음마의 산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힘의 핵심은 위대한 평범이다. 이는 스스로에게 대안을 최대한 많이 허용해 이게 아니면 저걸 하면 돼" 같은 식으로 여유를 보이는 것이다. 쉽지 않은 삶일지라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런 모라토리움적인 마음이다.

저자는 마음마의 산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계승하는 것을 짚어낸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승함으로써 누군가의 삶이 끝나도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다.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웃의 문제로 생각하고 역사를 공유하는 태도다. 저자는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마음의 병을 변화시키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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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개인이 사회의 모순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회는 개인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결국 개개인이 먼저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는 지금, 시대 탓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먼저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저자가 강조했듯이,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고민하는 태도, 방황하는 남이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 어딘가 뛰어들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마음의 실질을 길러낸다면 그 어떤 시대의 폭풍에도 꺾이지 않도록 갈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